마력의 태동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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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의 태동은 시리즈 첫 편인 라플라스의 마녀의 후속작이자 프리퀄로 모두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돼있습니다. 앞의 네 편이 주인공 우하라 마도카의 프리퀄이고 마지막 한 편은 전작에서 마도카와 함께 맹활약을 펼쳤던 지구화학 전문가 아오에 교수의 프리퀄입니다. 전작이 온천지대에서 벌어진 기이한 황화수소 중독사를 소재삼아 SF, 메디컬, 가족의 비극, 복수, 미스터리 등 여러 장르를 혼합시킨 대작이었다면, ‘마력의 태동은 주인공 마도카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와 함께 치유와 구원을 중점적으로 그린 휴먼 드라마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시리즈 첫 편의 제목이자 마도카를 가리키는 별명이기도 한 라플라스의 마녀는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라플라스가 창조한 초월적 존재 라플라스의 악마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그 초월적 존재는 모든 원자의 현재 위치와 운동량을 파악해낸 뒤 물리학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 미래까지 완전하게 예지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말 그대로 세상에 존재할 리 없는 초월적 존재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미지의 영역인 뇌의 세계와 물리학의 난제들을 지렛대 삼아 세상의 모든 물리적 현상을 예측해내는 신비로운 소녀우하라 마도카를 만들어냈습니다.

 

마도카의 프리퀄을 그린 네 편의 단편은 30대의 침구사(鍼灸士) 구도 나유타가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스키점프 선수 치료 차 출장을 떠났던 나유타는 우연한 기회에 유체역학 교수의 소개로 마도카와 인연을 맺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우연인 듯 운명인 듯 여러 차례 접점을 가지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치유와 구원의 손길을 내밉니다. 성적을 내지 못해 은퇴를 고민하는 노장 스키점프 선수, 베테랑 투수의 마구를 받아내지 못해 좌절한 젊은 포수, 아들의 죽음에 책임감을 느낀 나머지 절망의 날들을 보내는 노교사, 그리고 동성 연인의 죽음을 자기 탓으로 돌리며 괴로워하는 유명 작곡가 등이 마도카와 나유타 덕분에 다시 한 번 열심히 살아갈 희망을 품게 됩니다.

 

재미있는 건 마도카가 라플라스의 마녀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건 맞지만 치유와 구원의 마지막 단계는 좌절과 절망에 빠져있던 본인들의 의지와 노력에게 맡긴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만줄 뿐,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는다는 뜻입니다. 마도카의 특별한 능력을 거듭 목격하며 놀라움-믿을 수 없음-믿을 수밖에 없음의 단계를 거쳐 끝내 그녀를 신뢰하게 된 침구사 나유타의 진심 어린 응원 역시 치유와 구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데, 그는 마도카와의 인연 덕분에 오랫동안 끌어안고 있던 자신의 트라우마와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를 얻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마도카와 나유타는 띠동갑 이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치한 다툼에서부터 진지한 갈등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한 우여곡절을 겪게 됩니다.

 

지구화학 전문가 아오에 교수의 프리퀄은 라플라스의 마녀에서 벌어진 첫 번째 사건과 함께 그가 그로부터 3년 전에 겪은 또 다른 온천지대에서의 황화수소 중독사를 다룹니다. 마도카와 나유타가 등장하진 않지만 후속작을 위한 흥미로운 떡밥을 남겨놓기도 해서 곧이어 읽을 시리즈 3마녀와의 7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줬습니다.

 

패러독스 13’ 이후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과 미스터리를 외면해왔지만, ‘라플라스 시리즈덕분에 오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과도한 이과 미스터리는 여전히 기피 대상이지만 그래도 그동안 읽을 생각도 안 했던 작품들을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통해서라도 한두 편씩 알아볼까 고민 중입니다. 혹시라도 저처럼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과 미스터리에 거부감이 있던 독자라면 라플라스 시리즈를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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