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의 침묵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2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名品再讀은 오래 전에 읽었지만 서평을 남기지 않았던 작품들을 다시 읽으면서 제가 갖다 붙인 조잡한 타이틀입니다. 대부분 명작으로 기억하던 작품들이지만 다시 읽었을 때의 감흥은 조금씩 달랐습니다.)


망막아종(어린이의 안구에 발생하는 암)으로 도조대학 부속병원에 입원한 14세 소년 미즈토는 안구 적출수술을 거부하여 의료진을 곤혹스럽게 만듭니다. 개망나니인 아버지는 미즈토를 내팽개친 채 연락도 안 되는 상태였고, 결국 간호사 사요가 수술승낙서를 받기 위해 그를 만나러 나섭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미즈토의 아버지가 토막 시체로 발견됩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미즈토를 유력한 용의자로 단정하면서 동시에 알리바이가 모호한 사요를 공범으로 의심합니다. 한편 유명 여가수 사에코가 심각한 간경변으로 긴급 입원하는데, 그녀의 매니저 시로사키는 사에코 못잖은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간호사 사요에게 각별한 관심을 쏟습니다.

 

나이팅게일의 침묵은 의사 같지 않은 의사 다구치와 공무원 같지 않은 공무원 시라토리를 앞세운 가이도 다케루의 다구치-시라토리 시리즈두 번째 작품입니다. 피를 보기 싫어해서 내과를 선택한 다구치는 병원 내 권력투쟁이나 승진 경쟁이 싫어서 건물 한 구석에 자리한 부정수소외래(不定愁訴外來)에서 환자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한직 중의 한직에 근무하는 내과의사입니다. 안하무인에 지독한 독설가인 시라토리는 후생노동성의 꽉 막힌 관료 시스템에 반발하다가 한직으로 내쳐진 인물이지만 각종 의료면허는 물론이고 뛰어난 논리력과 추리력까지 갖춘 이른바 로지컬 몬스터입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캐릭터대로 두 사람은 무수한 충돌을 겪으면서도 묘하게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도조대학 부속병원에서 벌어지는 특이한 사건들을 해결하곤 합니다.

 

10여 년 전 시리즈 첫 편인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을 무척 재미있게 읽고 푹 빠져든 게 사실이지만, 후속작인 나이팅게일의 침묵은 그 당시에도 여러 번 고개를 갸웃거리며 페이지를 넘겼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입원환자의 아버지가 토막 시체로 발견되고 아들은 물론 담당 간호사까지 용의선상에 오르면서 메디컬 미스터리가 아닌 살인사건 미스터리가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하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 좀더 비중 있게 그려진 건 천상의 가릉빈가라 불리는 유명 여가수 사에코와 그녀 못잖게 특별한 목소리와 가창력을 지닌 간호사 사요가 이끄는 미묘한 공감각(共感覺, synesthesia)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공감각이란 어떤 감각에 자극이 주어졌을 때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감각 간의 전이 현상을 말합니다. 즉 한 감각이 다른 감각을 유발한다는 것입니다. ‘나이팅게일의 침묵에 등장하는 공감각은 노래에 의해 자극된 청각이 시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인데, 말하자면 노래를 듣는 순간 눈앞에 어떤 영상이 선명하게 보이는 현상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처음 읽었을 때 여러 번 고개를 갸웃거렸던 이유는 타인의 공감각을 이끌어내는 특별한 능력자들인 사에코와 사요의 이야기와 살인사건 미스터리가 머릿속에서 좀처럼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10여 년이 흘러 다시 읽은 이번에도 그 갸웃거림은 여전했습니다. 공감각이란 게 분명 과학적으로 입증된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제겐 황당한 SF 판타지 장치처럼 보일 뿐이었고, 그 현상을 이용하여 살인사건 미스터리의 진실을 밝혀낸다는 설정 역시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좀처럼 수긍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공감각은 공감각대로 난해하기만 했고, 살인사건 수사는 경찰 캐릭터들이 전담하고 있다 보니 정작 주인공인 다구치와 시라토리의 존재감은 미미하기만 했습니다. 물론 막판에 히드 카드로 반전을 일으키는 건 두 사람의 몫이었지만 계속 짙은 안개 속을 헤매듯 페이지를 넘겨온 탓에 쾌감이나 짜릿함 같은 건 느낄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밖에도 굳이 이 이야기에 등장할 필요가 있었나, 싶은 캐릭터들도 적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산만하게 읽힌 점도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10여 년 전에 느꼈던 실망감을 고스란히 다시 한 번 맛봐야 했던 책읽기였지만, 그래도 시리즈에 대한 애정이 너무 강한 탓에 나름 완곡한 악평으로 마무리하려 애써봤습니다.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후속작인 제너럴 루주의 개선은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은데, 부디 나이팅게일의 침묵의 아쉬움을 넉넉하게 보상해주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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