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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소리 마마 ㅣ 밀리언셀러 클럽 4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도쿄전력 여사원 매춘부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기리노 나쓰오의 ‘그로테스크’가 괴물로 진화한 네 명의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아임 소리 마마’는 현재 40대인 마츠시마 아이코가 어렸을 때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 끔찍한 괴물이자 연쇄살인마가 됐는지를 그린 작품입니다. ‘그로테스크’ 출간 후 기리노 나쓰오는 “당신 마음속에 ‘괴물’의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제 의도가 어느 정도는 전해진 셈입니다.”라고 밝혔는데, ‘아임 소리 마마’ 역시 똑같은 의도를 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물론 엄마가 누군지도 모른 채 성매매업소에서 태어나 성장한 마츠시마 아이코는 이후 보육시설을 거쳐 어른이 되면서 악의와 잔혹함을 거침없이 폭발시키는 괴물이 됩니다. 시기와 질투의 대상, 자신을 얕잡아보거나 무시하는 사람,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 등을 독극물이나 방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제거합니다.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수시로 직업과 거처를 바꾸던 아이코는 누군가 자신의 죄상을 고발하는 팩스를 여기저기 뿌린 것을 알게 되자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했던 성매매업소를 찾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누군지 짐작조차 안 가지만 자신을 낳아준 사람 혹은 그와 가까운 사람의 소행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상상도 못했던 자신의 과거와 조우합니다.
어려서부터 “(자신을 괴롭히고 무시하는) 타인의 죽음은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는 걸 깨달은 아이코는 이미 10대 때 괴물로서의 정체성을 완성합니다. 절도와 방화와 살인 등 그녀가 40대에 이르기까지 저지른 무수한 살상이 이 무렵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상대를 처리함에 있어 아이코에겐 조금의 주저함이나 고민도 없습니다. 그저 감정에 충실할 따름입니다. 물론 후회나 죄책감 따위도 없습니다. 그들은 큰 잘못을 저질렀고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은 것뿐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출판사 소개글대로 아이코는 ‘자기중심적이고 잔혹한 부분만을 농축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리노 나쓰오는 아이코를 괴물로 만든 갖가지 사연들 - 부모의 부재, 심신을 망가뜨린 학대, 배고픔과 절망 등 - 을 함께 풀어놓음으로써 단순한 소시오패스 스토리의 한계를 벗어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코에게 면죄부를 주지는 않습니다. 이 사연들은, 괴물이란 그저 한 방향으로만 폭주하며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재료와 양념이 가미되는 것은 물론 상하좌우로 급격히 요동치는 굴곡을 거쳐 만들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악인이지만 동시에 붙잡히지 않기를 바라게 만들기도 하는 미묘한 인물이라고 할까요? 또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냉정하고 중립적인 자세를 취함으로써 기리노 나쓰오는 아이코의 캐릭터를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생생하게 창조해낸 것입니다.
230여 페이지의 짧은 분량임에도 모두 12개의 챕터로 나뉘어있는데, 일부 챕터는 어떤 식으로든 아이코와 접점이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로만 채워진 경우도 있습니다. 즉 이 작품은 ‘아이코의 괴물 진화기’를 다룬 장편이면서 동시에 아이코 못잖게 규범이나 도덕을 무시하는 일그러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연작 단편이기도 합니다. 괴물까진 아니어도 극단적이거나 그로테스크한 면모를 품은 조연들의 이야기는 아이코의 ‘괴물 진화기’만큼이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다만 대부분이 짧고 강한 임팩트를 남기며 등퇴장하곤 하는데, ‘아임 소리 마마’가 군살 없이 탄탄한 작품이긴 하지만 이 흥미로운 조연들의 이야기에 좀더 많은 분량이 투입됐다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로테스크’와 마찬가지로 ‘아임 소리 마마’는 이야미스와는 조금은 결이 다른 종류의 불쾌감이 책읽기 내내 따라다니는 작품입니다. 오물을 뒤집어쓰거나 느닷없이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을 받는 대목들도 종종 있는데, 실은 그 불쾌감이야말로 두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자 개성이라는 생각입니다. 자신 있게 추천하긴 어렵지만 취향이 맞는 독자라면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니 기회가 된다면 꼭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