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처 : 벨몬트 아카데미의 연쇄 살인
서맨사 다우닝 지음, 신선해 옮김 / 황금시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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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 크러처는 명문 사립고교 벨몬트 아카데미의 영문학 교사입니다. ‘올해의 교사에 선정될 정도로 능력도 있고,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와 신념 역시 확고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에 못잖게 오만과 독선과 자기애가 강한 테디는 극성 학부모, 건방진 학생, 못마땅한 동료 교사에 대한 혐오와 짜증으로 치를 떨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경고와 교훈을 주기 위해 일종의 취미활동인 실험을 통해 상대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안기곤 했는데, 어느 날 그 실험이 예상치 못한 착오와 우연으로 인해 사망자를 유발하고 맙니다. 엉뚱한 사람이 살인범으로 몰리고 사태가 확산되자 테디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합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벨몬트 아카데미는 살인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티처는 심리극의 묘미가 깃든 연쇄살인 스릴러이자 잔혹하면서도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는 잘 짜인 한 편의 블랙 코미디입니다. 명문 사립고의 학부모와 교사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동일범에 의해 살해되는 끔찍한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지만, 조금의 죄의식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신념을 위해 태연히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의 행태라든가 이야기 저변에 흐르는 신랄하면서도 냉소적인 분위기 때문에 잔혹한 블랙 코미디의 풍미를 진하게 맛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극성 학부모와 건방진 학생과 속물적인 교사들로 이뤄진 명문 사립고가 갑자기 살인라는 별명을 얻고 추락하면서 우왕좌왕하는 벌이는 꼴사나운 모습은 B급 군상극의 재미도 선사합니다. 초반에 범인과 수법이 모두 공개됨에도 불구하고 5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 안에 다양한 장르가 혼재돼서 순식간에 마지막 장까지 달릴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란 뜻입니다.

 

이런 학생들을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가르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사람들은 모른다. 그가 이토록 애쓰고 애쓰고 또 애쓰는데도 때로는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다 그들을 위한 일이다.” (p254)

 

벨몬트 아카데미에서 벌어진 끔찍한 연쇄살인의 출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 테디가 교사로서 가진 확고한 신념과 태도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학생을 위해 진심으로 헌신하는 교사라고 여기고 행동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헌신을 거부하거나 못 알아먹는 학생에겐 무자비한 응징을 가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범인으로 몰린 학생을 구하기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정의로운(?) 교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반기를 든 학생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리는 무자비한 사이코패스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다 너희를 위한 일이야.”라는 의미의 원제 ‘For Your Own Good’은 바로 테디의 대의이자 삶의 좌표이기도 한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건 죄다. 하지만 제자들을 일생일대의 위기에서 구출해내기 위해서였다면 그건 넓은 의미로 가 아닌지도 모른다.” (p390)

 

테디의 광폭 행보가 이야기의 한 축이라면, 나머지 한 축은 그를 의심하고 뒤를 캐는 몇몇 인물들의 스릴감 넘치는 추적기입니다. 심증은 충분하지만 애매하게 조각난 단서들밖에 손에 넣지 못한 그들이 테디의 주변을 맴도는 장면들은 나름 쫄깃한 긴장감을 선사하는데, 독자 입장에선 그들이 과연 테디의 행각을 밝혀낼 수 있을지, 저러다가 테디에게 당하는 건 아닌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과연 테디는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그가 체포되기는 하는 건지, 그에게 목숨을 잃을 사람이 얼마나 더 나올지,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기는 할지 가늠할 수 없어서 마지막 장까지 쉬지 않고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서맨사 다우닝은 2020마이 러블리 와이프로 한국에 처음 소개됐는데, 심리스릴러 혹은 도메스틱 스릴러에 한참 질려 있을 때라 제목만 보곤 바로 외면했던 작품입니다. 하지만 티처를 읽고 나니 궁금증과 호기심이 저절로 발동해서 기회가 되면 일단 초반 100페이지 정도만이라도 도전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테디 크러처 못잖은 흥미로운 캐릭터가 등장한다면 어쩌면 그 자리에서 마지막 장까지 한 번에 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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