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의 오만 이누카이 하야토 형사 시리즈 5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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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년이 장기가 적출당한 채 시신으로 발견되자 경시청 수사1과 이누카이 하야토는 과거 담당했던 살인마 잭의 모방범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하지만 얼마 후 파트너인 아스카가 소년의 신분(중국인 빈민)을 알아낸 것은 물론 연이어 극빈층 10대 소년들이 비슷한 형태로 살해당하자 이누카이는 조직적인 장기밀매 범죄임을 깨닫곤 수사에 박차를 가합니다. 좀처럼 단서를 잡지 못해 수사본부가 무기력해질 무렵, 이누카이의 직감이 유력한 용의자 한 명을 포착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면서 오히려 이누카이를 곤혹스럽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누카이와 아스카는 그 사태를 실마리 삼아 사건의 진상에 한걸음 다가가게 됩니다.

 

카인의 오만은 시리즈 첫 편인 살인마 잭의 고백에 이어 장기이식 혹은 장기매매 관련 사건을 다룬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입니다. 특히 카인의 오만은 장기이식과 장기매매 자체의 윤리적 문제라든가 사회적 시스템에 관한 논쟁은 물론 빈곤, 청소년, 복지 문제까지 아우르고 있어서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외양 외에도 한 편의 강렬한 성명서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희생자들이 모두 10대인데다 극빈층 출신이며, 누군가 돈과 인맥을 가진 자가 가난한 자의 장기를 노렸다는 정황이 확실해지자 이누카이와 아스카를 포함하여 수사진 모두가 격분합니다. 평소 10대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아스카가 그 어느 때보다 감정을 앞세워 수사하는가 하면, 수사결과에만 집착할 뿐 시니컬한 태도를 견지하던 아소 반장마저 상부와 각을 세우며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다만, 만성 신부전증으로 투석을 받으며 장기이식만 고대하고 있는 딸 사야카를 둔 이누카이로서는 이번 사건이 남달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범인을 잡겠다는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하지만, ‘밀매를 통해서라도 사야카의 장기를 얻을 수 있다면...’이라는 사념 역시 머릿속 어딘가에서 맴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락사를 다룬 전작 닥터 데스의 유산에서 사야카가 투병 끝에 극도의 고통에 빠진다면 안락한 죽음을 맞이하게 해주는 것이 옳은 일인가?”라는 문제 때문에 괴로워했던 형사이자 사야카의 아버지이누카이가 이번에는 장기밀매 사건으로 인해 다시 한 번 혼란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카인의 오만은 반전의 쾌감에 관한 한 나카야마 시치리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수사는 거의 돌직구처럼 전개되고, 막판 반전의 강도와 충격은 조연급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에 남는 여운은 그 어떤 작품보다 강렬합니다.

서평을 쓰기 직전에 머릿속에 든 생각은 “‘장기이식이 궁극의 치료법인 현실에서 과연 장기매매는 나쁜 건가?”라는, 법과 상식에 반하는 자문이었습니다. 그런 자문을 떠올리게 만든 건 장기를 판 빈자는 돈을 얻어 좋고, 장기를 얻은 부자는 건강을 되찾아 좋고, 이식 수술이 거듭될수록 의료진의 기술이 향상될 수 있으니 그야말로 모두가 좋은 게 아니냐?”는 한 인물의 주장인데, 처음엔 그저 헛소리 같았지만 생각할수록 일견 그럴듯한 소리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법과 시스템은 장기이식 자체를 극도로 제한하고 있고,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공급은 중증환자들로 하여금 제때 장기를 기증받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사형수의 장기이식과 보상을 제도화한 중국이 오히려 선진적으로 느껴진 건 저만의 경험은 아닐 것입니다.

 

(평점과는 무관하게) 장기이식 또는 장기매매에 관해 거침없이 문제를 제기한 카인의 오만은 존엄사 혹은 안락사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닥터 데스의 유산과 함께 이 시리즈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작품입니다. 주제도 주제지만, 어쩌면 형사이자 사야카의 아버지인 이누카이에게 너무나도 큰 혼란과 갈등과 고민을 안겨준 사건들이 등장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일본에서 출간된 시리즈 여섯 번째 작품 라스푸틴의 정원에서 이누카이가 어떤 사건과 마주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 작품에선 이누카이가 사야카의 아버지로서 감당해야 할 고통이 앞선 두 작품보다는 조금은 덜 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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