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1
조엘 디케르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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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6, 미국의 지성이자 존경받는 문학교수이며 국민작가로 칭송받는 해리 쿼버트의 자택 정원에서 33년 전 15살의 나이에 실종된 소녀 놀라 켈러건의 유해가 발견됩니다. 유해 옆엔 해리의 대표작인 악의 기원의 원고 뭉치가 놓여 있었고 그는 즉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돼 구치소에 수감됩니다. 33년 전 30대 중반이던 자신과 15살이던 놀라 켈러건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으며 악의 기원은 두 사람의 사랑을 모티브로 한 책이라는 해리의 자백에 문학계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 전역이 큰 충격에 휩싸입니다. 한편 데뷔작으로 정상에 오른 젊은 소설가이자 해리의 특별한 제자인 마커스 골드먼은 그가 결코 놀라 켈러건을 죽였을 리 없다는 확신을 갖고 직접 진상 조사에 나섭니다. (출판사 소개글을 일부 수정 후 인용했습니다.)

 

2013년에 처음 출간됐을 때부터 관심을 가진 작품이지만 개정판이 나온 11년 뒤에야 읽게 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엄청난 분량(개정판 기준 1~2권 합계 1,100)에 대한 부담감이었고, 또 하나는 2019년에 출간된 스테파니 메일러 실종사건을 끝까지 읽어내지 못하고 도서관에 반납한 탓에 조엘 디케르는 나와는 궁합이 맞지 않는 작가라고 예단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밝은세상의 서평단 제안이 아니었다면 영영 읽지 못할 뻔한 작품인데, 이 매력적인 이야기와 가까스로 인연이 닿은 건 정말 행운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이야기의 뼈대는 간단합니다. 국민작가인 해리 쿼버트가 33년 전 뉴햄프셔주의 소도시 오로라에서 15살 소녀 놀라 켈러건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사건의 진실을 그의 제자이자 미국 문학계의 신성인 마커스 골드먼이 강력계 형사 페리 게할로우드의 도움을 받아 파헤치는 이야기입니다. 인터넷서점에선 이 작품을 프랑스 문학으로 분류해놓았지만 미스터리 스릴러의 서사가 바탕에 깔려 있어서 프랑스 문학에 거부감을 가진 독자라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줄거리만 보면 1,100쪽이라는 분량이 의아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범죄 청정지역으로 불려온 소도시 오로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지독하다 싶을 정도의 탐문을 벌이는 마커스의 행보를 쫓아가다 보면 엄청난 디테일의 힘과 마력에 여러 차례 놀라게 되면서 왜 이토록 방대한 분량이 필요했는지를 쉽게 수긍하게 됩니다.

또한 단순히 범인은 누구?’라는 미스터리 외에도 다양한 서사가 포진돼있어서 조금의 지루함도 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습니다. 오로라 주민들에게서 감지되는 비밀과 거짓말, 시기와 질투, 탐욕과 이기심은 33년 전 사건의 이면에 더럽고 추악한 진상이 숨어있음을 예감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그 누구라도 놀라 켈러건 살해범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또한 각별한 사제관계인 해리와 마커스를 통해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소설가의 세계를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데, 사건 자체와는 무관해 보이던 이 소설가에 관한 심층적 고찰은 막판에 이르러 미스터리 서사와 결합되면서 큰 놀라움과 함께 그 존재의 이유를 드러냅니다.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의 가장 큰 매력은 시종 쉴 새 없이 터지는 반전입니다. 놀라 켈러건 살해용의자가 수차례 뒤바뀌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33년 전부터 지금까지 오로라 주민들이 품어온 숱한 비밀과 거짓말이 폭로되는가 하면, 15살의 나이에 30대 중반인 해리와 사랑에 빠졌던 놀라 켈러건의 충격적인 과거가 드러나기도 하고, 마커스의 존경과 믿음의 대상이자 사건의 핵심인물인 해리마저 여러 차례 마커스의 뒤통수를 치는 반전을 일으키곤 합니다. 그야말로 반전의 불꽃놀이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방대한 분량에 걸맞게 등장인물도 많고 관계도 복잡해서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진 못했지만 이 작품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홍보 카피의 헤드라인 정도만 참고한 상태에서 읽을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인터넷서점의 출판사 소개글도 꽤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스포일러는 아니지만 책읽기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마음만 먹으면 만 하루 안에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을 정도로 흡인력이 대단한 작품이니 저처럼 분량에 부담을 느끼는 독자라도 일단 100페이지만 읽어보자”,라는 마음으로 도전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미 한국에도 출간된 조엘 디케르의 볼티모어의 서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이 이 작품과 함께 3부작으로 통한다고 합니다. 내용은 독립적이지만 마커스 골드만이 화자로 등장하는 등 일부 인물들이 겹쳐서 연작소설처럼 읽히기 때문입니다. 역시 분량이 만만찮은 작품들이지만 언젠가는 꼭 읽어볼 생각입니다. 물론 중도 포기했던 스테파니 메일러 실종사건도 재도전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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