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야가의 밤 - 각성하는 시스터후드 첩혈쌍녀
오타니 아키라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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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흉기라고 할 만큼 순수한 폭력의 화신인 22살의 신도 요리코. 어느 날 자신을 성추행한 양아치 일당을 무자비하게 때려눕히던 중 야쿠자 회장의 저택으로 끌려간 그녀는 회장의 딸인 18살 쇼코의 운전기사이자 보디가드가 되라는 어이없는 협박성 제안을 받습니다. 개죽음만은 피하고 싶었던 요리코는 이후 저택에 머물며 마치 인형처럼 감정도, 표정도 없어 보이는 쇼코의 시중을 들게 됩니다. 어색하고 냉랭하기만 했던 둘의 관계는 사소한 일탈을 계기로 조금씩 녹기 시작했고 가슴에 담아뒀던 이야기까지 꺼내는 단계에 이릅니다. 하지만 야쿠자 저택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태로 인해 두 사람의 운명은 예기치 못한 변곡점을 맞이합니다.

 

윈저 노트, 여왕의 비밀 수사 일지’(소피아 베넷), ‘세상 끝의 살인’(아라키 아카네)과 함께 북스피어의 첩혈쌍녀 시리즈로 출간된 작품입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시리즈 명칭에 진심으로 걸맞은 작품으로, 순수한 폭력을 갈구하는 싸움의 신신도 유리코와 야쿠자 회장의 금지옥엽나이키 쇼코가 벌이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편집자인 삼송 김사장 님의 평을 조합해서 정리하면 이 작품의 장르는 심장 떨리는 하드보일드 바이올런스 액션 스릴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훗카이도의 외진 마을에서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에 의해 고문에 가까운 훈련을 받은 요리코는 몸과 마음 모두 폭력이 주는 희열에 빠진 채 성장했습니다. 18살이 되어 도쿄에 온 요리코는 싸움꾼이 되진 않았지만 누군가 시비를 걸어오면 반드시 두 배로 갚아주며 폭력의 쾌감을 만끽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엄청난 폭력 재능에 반한 야쿠자가 숱한 희생을 치러가면서 그녀를 회장 딸 쇼코의 보디가드로 삼기 위해 끌고 간 것입니다.

피지컬도 멘탈도 강한 여성, 게다가 싸우기 위한 동기가 내면에서 솟아나는 여성을 그리고 싶었다.”는 작가 오타니 아키라는 영웅적인 여주인공에게 반드시 필요한 싸워야 할 이유’, 즉 가족이나 연인이나 친구를 위한 복수심 같은 것 없이도 순수하게 폭력을 갈망하고 희열을 느끼는 요리코를 창조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사실 멋있으면서도 폭력적인 남성 영웅 중에는 굳이 아무 이유 없이도 매력적으로 그려진 경우가 적지 않으니 오타니 아키라의 일성은 충분히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튼... ‘보디가드요리코와 아가씨쇼코의 관계가 조금씩 풀어지며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는 지점까지만 해도 오락성이 풍부한 재미 만점의 해피엔딩 액션 스릴러라고 단정하고 있다가 중반부쯤의 예기치 못한 전개에 꽤 세게 뒤통수를 맞은 순간엔 말 그대로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오고 말았습니다. 무자비한 야쿠자의 세계에서 요리코와 쇼코가 말랑말랑한 해피엔딩을 맞이할 거라고 예상하진 않았지만, 극적인 반전과 함께 이야기의 톤 자체가 처절함과 처연함으로 급변하는 대목에선 단순한 놀람 이상의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다 읽은 뒤 인터넷서점 출판사 소개글에서 발견한 이 지옥 같은 세계에서 등을 맡기고 싸우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라는 일본 아나운서 우가키 미사토의 한 줄 평은 그 반전을 읽은 순간의 제 심정을 100%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삼송 김사장 님은 아주 깜찍한 반전이라고 표현하셨지만 저는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묵직한 반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바바야가의 밤2021년 제7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장편부문에서 최종 후보에 올랐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론 신초샤(新潮社)가 주관하는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R-18 문학상에 어울리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심장 떨리는 하드보일드 바이올런스 액션 스릴러지만 동시에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치열하고 리얼한 서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요리코와 쇼코는 연인도, 친구도 아니지만 그 이상의 연대로 묶인 시스터후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슬라브 신화에 등장하는 마귀할멈 바바야가처럼 엄청 강하고, 마을사람들이 무서워하지만 착하고 친절한 여자애가 간절히 부탁하면 어려운 일을 도와주기도 하는사람이 되고 싶다는 두 여자가 야만적이고 파괴적인 남성 야쿠자의 세계를 벗어나 파란만장하고 기구한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과정은 무척이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사족 1. 요리코가 순수한 폭력의 화신이며 이야기의 주 무대가 야쿠자의 저택인 만큼 꽤 높은 수위의 폭력적인 묘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사족 2. 오타니 아키라의 또 다른 한국 출간작 우리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진심으로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소설 같은데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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