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완장 (출간 40주년 기념 특별판)
윤흥길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3월
평점 :
1980년대 이리市(현재 전북 익산시 일부) 외곽의 이곡리. 벼락졸부인 최사장은 저수지 사용권을 따낸 뒤 그 관리를 동네건달 임종술에게 맡깁니다. 애초 일이란 걸 할 마음이 없던 임종술이었지만 완장을 차게 해준다는 말에 솔깃해선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스스로 ‘감독’이라고 적힌 완장을 만들어 찬 임종술은 그날 이후 저수지 관리는 말할 것도 없고 동네 안팎에서 완장의 위용을 거들먹거리며 유세를 부리기 시작합니다. 어느 새 완장의 권력에 푹 빠져든 임종술은 저수지가 자신의 것이라도 된 양 넘어선 안 될 선을 넘기 시작하고, 가뭄으로 인해 저수지의 물을 빼기로 한 마을의 결정조차 거부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완장의 위용은 균열을 일으키며 파국을 향하고 있었지만 임종술의 욕망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책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그 제목만은 한두 번쯤 들어본 적 있는 윤흥길의 ‘완장’이 1983년 첫 출간된 이후 5판인 ‘출간 40주년 기념 특별판’으로 다시금 독자를 찾았습니다. 오래 전부터 언젠가는 꼭 한 번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던 작품인데, 뒤늦게나마 40주년 특별판으로 읽게 돼서 마치 오랫동안 밀린 숙제를 마친 듯한 개운함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단 두 글자의 제목이지만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완장’은 그 자체로 강렬한 이미지를 품은 단어입니다. 공포와 굴복을 강요하는 가공할 폭력성을 상징하기도 하고 “완장이라도 찼냐?”라는 흔한 비아냥처럼 한줌도 안 되는 권력에 대한 냉소를 은유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기회가 된다면 한번쯤 차보고 싶은 욕망’을 누구에게나 불러일으키는 요망한 물건이기도 합니다.
건달에 한량인 임종술은 잠시지만 서울에서 험난한 생활을 하는 동안 그 완장의 힘에 수차례 짓눌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쥐꼬리만한 월급의 저수지 관리인’이라는 제안에 격분하다가도 완장이란 말을 듣는 순간 앞으로 자신이 거머쥐게 될 권력을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자비를 들여 만든 완장을 찬 그 순간부터 임종술의 세상은 그 전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는 신세계로 급변했고, 하루하루 커져가는 권력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며 도취하는 것은 물론 광대한 저수지가 마치 자기 소유의 땅이라도 되는 양 열광하게 된 것입니다.
‘완장’의 진짜 이야기는 임종술의 권력이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는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본분을 망각한 탐욕, 스스로 초래한 위기, 빼앗기지 않으려는 발버둥,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선택한 위험천만한 정면 돌파, 그리고 예정된 파국에 이르기까지 임종술의 짧은 연대기는 허망한 권력을 탐하다가 몰락해간 유명한 인물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완장’의 진짜 미덕은 임종술의 비극이라는 줄거리 자체보다 그 과정을 그려낸 풍자와 해학의 서사에 있습니다. “권력을 희화화하고, 희화화된 권력을 취하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주인공을 내세워 권력을 더욱 풍자하는 격”이라는 출판사 소개글대로 ‘완장’은 정색하고 주제를 강요하는 고발물이 아니라 과거 종이신문의 4단 만화처럼 독자로 하여금 폭소와 냉소를 번갈아 만끽하게 하는 풍자극이자 해학극입니다.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이 풍자와 해학은 훨씬 더 예리하고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지니고 있어서 작가가 임종술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주제를 좀더 생생하게 맛볼 수 있게 해줍니다.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희화화의 대상으로 삼아 마구 꼬집고 할퀴고 옆구리와 발바닥을 간질임으로써 우스꽝스런 꼬락서니로 짓뭉개놓았노라고 생각했을 때의 그 쾌감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제3판 작가의 말’)
주인공 임종술은 악당이 아닙니다. 물론 평범한 인물도 아니긴 하지만 완장과 권력을 향한 그의 욕망은 누구라도 품을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고 손에 넣은 것들을 지키려는 발버둥 역시 자연스러운 대응일 뿐입니다. 누구도 그의 욕망과 발버둥을 비난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누군가 자신에게 완장을 채워주겠다고 했을 때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바꿔 말하면 누구라도 임종술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작가가 ‘완장’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 역시 “임종술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당신도 언제든 완장을 찰 기회가 온다면 임종술이 될 수 있다.”가 아닐까요?
얼마 후면 국회의원 선거가 있습니다. 코미디에 가깝지만 정치인들이 상대방을 비난할 때 자주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완장입니다. 완장 같은 거엔 관심도 욕심도 없다는 뻔한 거짓말을 하면서도 정작 눈에 보이지 않는 완장을 찬 채 권력을 누리고 탐하는 게 자신들이라는 걸 망각한 듯 말입니다. 문득 그들이 윤흥길의 ‘완장’을 읽는다면 어떤 독후감이나 서평을 내놓을지 궁금해집니다. 대부분 “나는 임종술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겠지만, 적어도 활자로 인쇄된, 그래서 안 보려야 안 볼 수 없는 당연한 교훈만큼은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