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물이 너를 베리라
S. A. 코스비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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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동성 부부인 아이지아와 데릭이 잔인하게 살해당합니다. 원한 관계로만 추정될 뿐 아무런 단서도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의 수사는 거의 답보상태입니다. 피해자들의 아버지인 아이크와 버디는 직접 진상을 알아내기로 하고 위험천만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성 소수자 문제를 다루는 비영리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하던 아이지아가 어떤 일을 보도하려던 게 사건의 기점임을 알게 된 아이크와 버디는 아들들이 살던 집에서 단서를 찾으려 하지만 갑자기 쳐들어온 괴한들에게 습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들들을 살해한 갱단의 정체를 파악한 것은 물론 사건 이면에 한 여자가 연루된 사실도 알아냅니다. 아이크와 버디는 여자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지만 사태는 점점 그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뿐입니다.

 

처음 그 이름을 들어본 작가였지만 검은 황무지라는 묵직한 제목과 어둡고 황량한 분위기를 발산하는 표지에 이끌려 만났다가 곧바로 팬이 된 S. A. 코스비의 두 번째 한국 출간작입니다. ‘검은 황무지도 그랬지만 묵직하면서도 돌직구처럼 날아가는 S. A. 코스비의 서사는 단순한 진실 찾기를 넘어 깊은 여운을 자아내는 다양한 주제를 동시에 다루고 있습니다.

 

내 눈물이 너를 베리라는 아들들의 죽음의 진상을 밝히려는 두 아버지의 분투가 메인 줄거리지만, 그에 못잖게 인종, 세대, 성 소수자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사회파 스릴러이기도 합니다. 흑백 동성 부부였던 아이지아와 데릭은 가족 그 누구에게도 축복받지 못한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들의 아버지였던 아이크와 버디는 아들들의 커밍아웃에 분노했고 그들의 결혼식을 외면했으며 그들이 살해당하기 전까지도 거의 절연하다시피 지내왔습니다. 하지만 사건 이후 두 아버지의 가슴 속엔 돌이킬 수 없는 회한만 남게 됐고, 아들들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끝 모를 자책감과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합니다. 결국 아들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그들의 목숨을 앗아간 자들을 향해 순수한 증오심을 담아 복수하기로 결심합니다.

 

인종도 다르고, 처지도 다르지만 아이크와 버디는 치명적인 전과자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갱단과 맞서 싸우기에는 턱없이 나이가 든 중년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폭력에 익숙한 전과자라는 이력이 그들의 유일한 무기이자 버팀목입니다. 아이크와 버디를 상대하는 악당들은 늙은 소금과 후추’(흑백 인종을 일컫는 속어)라며 조소를 보내다가 이내 나이를 초월한 그들의 폭력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잠시 후엔 피와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악몽을 경험하게 됩니다. S. A. 코스비의 폭력 묘사는 그리 잔혹한 편은 아니지만 너무나도 사실적이어서 마치 직접 목격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그래선지 아이크와 버디가 거침없이 응징을 가하는 장면들은 사이다 같은 통쾌함과 함께 그들의 꺼지지 않을 분노를 100% 생생하게 공감할 수 있게 만듭니다.

 

피와 살점이 튀는 폭력을 동반한 복수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복수의 여정을 통해 나이 든 두 남자가 많은 것들을 깨달으며 변화하는, 하지만 너무 늦어버린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라는 출판사의 소개글처럼 아이크와 버디는 아들들의 죽음의 진실에 다가가면 갈수록 더욱 깊은 회한에 빠져듭니다. 하지만 자책감과 죄책감에 짓눌렸던 초반과 달리 두 사람은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아들들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결국엔 그들이 남긴 손녀 아리아나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깨달음은 너무 늦게 찾아왔지만 이제는 아들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가슴 속에 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폭력적이지만 감동적인 스릴러라는 평단의 호평은 아마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S. A. 코스비의 최근작은 2023년에 출간된 ‘All the Sinners Bleed’입니다. 두 편의 전작이 모두 호평을 받았으니 빠르면 올해 안에 한국에 소개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문학성까지 가미한 유려한 문장과 묵직하면서도 속도감 높은 스릴러 서사까지 겸비한 S. A. 코스비의 신작 소식이 하루라도 빨리 들려오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사족으로... ‘검은 황무지와 달리 내 눈물이 너를 베리라에선 적잖은 오타가 눈에 띄었습니다. 한참 몰입해있던 중에 불쑥불쑥 튀어나온 오타 때문에 한숨이 나곤 했는데, 단순히 옥의 티라고 보기엔 좀 과한 편이었습니다. 출판 과정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지만 오타는 정말 피할 수 없는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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