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의 창자 명탐정 시리즈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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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에는 출판사가 공개하지 않은 초반 내용이 약간 포함돼있습니다.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하라와타(はらわた, 창자)라는 별명을 가진 21세의 하라다 와타루는 명탐정 우라노 큐의 조수입니다. 전국 경찰로부터 지원요청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우라노는 오카야마 현의 작은 마을 기지타니의 절 간노지에서 일어난 방화 및 집단사망사건 조사를 부탁받습니다. 하지만 우라노가 급히 오사카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와타루는 홀로 사건을 조사하는 처지가 됩니다. 며칠간 추리와 탐문을 거듭한 와타루는 나름 살인사건이라는 확신을 갖고 범인을 지목하지만 오사카에서 돌아온 우라노에 의해 그의 추리는 부정당합니다. 문제는 우라노의 관심이 범인의 정체보다 그가 벌인 전대미문의 행위와 그것이 야기할 끔찍한 사건들이란 점입니다. 우라노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되고 일본 전역에서 엄청난 사건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인터넷서점의 출판사 소개글을 보면 알겠지만 이 작품의 줄거리에 관해선 극히 일부만, 그것도 무슨 얘긴지 짐작하기 힘들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초반 설정을 언급하지 않으면 두루뭉술하고 모호한 인상비평밖에 할 수 없는데, 문제는 독자에 따라 그 부분을 스포일러로 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스포일러가 되지 않게, 그러면서 이 작품에 대해 구미가 당길 정도로만 초반 설정을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인공 와타루가 다루는 네 개의 사건이 단편 형식으로 수록돼있는데, 위에 정리한 줄거리는 그중 첫 번째 작품인 간노지 사건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촉발된 믿기 힘든 상황과 연이은 대량 살인사건들을 해결하는 게 나머지 세 작품의 내용입니다. 무엇보다 와타루를 충격에 빠지게 한 건 그 사건들이 과거 20세기의 일본을 충격에 빠뜨렸던 최악의 사건들과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그것도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다는 점, 그리고 범인들 역시 짧게는 20년 전, 길게는 80년 전에 사건을 일으켰던 바로 그 범인들이란 점입니다. 믿을 수 없지만 결국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와타루 앞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인물이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합니다.

 

본격 미스터리로 출발했다가 순식간에 (출판사의 소개글대로) ‘기괴하기 짝이 없는 호러 판타지로 급변하지만 그 해법과 마무리는 다시 본격 미스터리를 통해 이뤄지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를 통해 이미 시라이 도모유키의 특수설정 미스터리를 충분히 맛봤지만 명탐정의 창자는 한걸음 더 나아가 특수설정 하에 본격과 호러가 기괴하게 얽힌 복합 미스터리라는 흥미로운 서사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현실 속 최고의 명탐정이 비현실 속 최악의 살인마와 대결하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기괴하기 짝이 없는 호러 판타지도 흥미롭지만 명탐정과 조수가 벌이는 추리 대결은 본격 미스터리의 참맛을 만끽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직 미숙하긴 해도 명탐정의 조수 3년차인 와타루는 번번이 추리를 부정당하면서도 꿋꿋이 자신의 갈 길을 갑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진짜 명탐정으로 거듭나는 희열을 맛보기도 합니다.

시라이 도모유키의 전작들이 특수설정은 빛나지만 다소 작위적이고 개연성이 부족하다.”라는 느낌을 줬다면 명탐정의 창자는 와타루의 성장과 활약, 그리고 복잡하긴 해도 정교하게 짜인 본격 미스터리의 서사 때문에 별 거부감 없이 술술 읽힌 작품입니다. 물론 기괴하기 짝이 없는 호러 판타지야말로 이 작품의 특수설정의 백미지만 말입니다.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를 읽은 뒤 특수설정 자체도 그리 끌리지 않았고 저와는 합이 잘 안 맞는 작가라고 생각해서 직전 작품인 명탐정의 제물은 출간소식을 듣고도 독서목록에서 제외시켰는데, 이 작품을 읽고 나니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볼까, 싶어지기도 합니다. 물론 여전히 시라이 도모유키가 제 취향과 조금은 거리가 있는 작가이긴 하지만 명탐정의 창자같은 작품이라면 특별한 간식처럼 가끔은 읽어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사족이지만, 최애 작가 중 한 명인 요코미조 세이시와 그가 창조한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 그리고 본격 추리가 가미된 일본 공포의 원점이라는 평을 들은 팔묘촌이 자주 언급된 건 무척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아직 팔묘촌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명탐정의 창자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꼭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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