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워닝 잭 매커보이 시리즈
마이클 코넬리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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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살인사건 전문기자로 활약하며 두 개의 큰 사건(‘시인’, ‘허수아비’)에 관여한 것은 물론 그 과정을 책으로 펴내 부와 명예를 누렸던 잭 맥커보이. 하지만 50대가 된 지금 그는 페어 워닝(Fair Warning)이라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뉴스 사이트에서 소시민의 경비견을 자칭하며 평범한 기자 생활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그런 그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연쇄살인의 단서를 발견하곤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사고나 자살로 위장한 듯한 엽기적인 살해방법도 특이해 보였고 피해자들이 특정업체에 DNA 조사를 의뢰했던 공통점까지 알아낸 잭은 전직 FBI 요원이자 연인이었던 레이철 월링을 찾아가 도움을 청합니다.

 

시인’, ‘허수아비’, ‘페어 워닝으로 이어지는 잭 매커보이 시리즈는 단 세 편뿐이지만 무려 24년에 걸친 긴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1996시인에서 콜로라도의 중소신문사 기자였던 잭은 2009허수아비에서는 LA타임스의 잘 나가는 고액 연봉자였고,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20페어 워닝에서는 소비자 보호를 기치로 내건 인터넷 매체의 기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팔팔하던 20~30대의 잭이 어느 새 50대가 된 건 서글픈 일이지만 살인사건 전문기자라는 그의 본능은 여전히 날카로움과 집요함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리즈는 잭과 레이철 시리즈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레이철 월링의 비중과 활약이 압도적입니다. 두 사람은 기자와 FBI 요원이라는 관계를 넘어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굴곡을 겪어왔습니다. “그녀와의 관계는 뜨겁고도 차가웠고 강렬하면서도 소원했으며 친밀하면서도 엄격하게 직업적이었다. 궁극적으로는 마음이 찢어질 듯한 관계였다. 처음부터 레이철은 내 가슴에 거의 낫지 않을 구멍을 남겼다.”라는 잭의 고백대로 애정과 증오를 수없이 주고받으며 25년에 가까운 관계를 이어온 셈입니다. 그리고 허수아비이후 달콤한 미래까지 꿈꿨다가 돌이킬 수 없는 파탄을 맞이했던 두 사람이 오랜만에 또 다시 희대의 연쇄살인마를 잡기 위해 손을 맞잡습니다. 이 시리즈를 읽어온 독자라면 진실 찾기 또는 진범 잡기 못잖게 잭과 레이철이 어떤 엔딩을 맞이하게 될지 무척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1년 전 우연히 만나 딱 한 번 관계를 가졌던 여자가 살해된 사건 때문에 잭은 경찰에게 심문을 당합니다. 그녀의 사인이 고리뒤통수 관절 탈구, 즉 목을 180도 비틀어 죽인 특이한 케이스라는 점에 주목한 잭은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똑같은 사인으로 죽은 여자가 전국적으로 여러 명이라는 점을 알아냅니다. 또 그녀들이 모두 같은 업체에 자신의 DNA 조사를 의뢰했다는 사실까지 알아낸 잭은 본격적인 조사를 위해 레이철 월링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페어 워닝의 동료기자 에밀리까지 가세하여 의심스러운 부분들을 조사하던 잭과 레이철은 큰 충격에 빠집니다.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는 DNA 산업이 현실에서 얼마나 끔찍한 일들을 일으킬 수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유전학 연구의 상업화에 따른 실제적 위험에 장르적 관습을 영리하게 적용한 놀라운 작품이라는 뉴욕 타임스의 북 리뷰처럼 페어 워닝은 제대로 된 규제도 없이 무분별하게 일반상품처럼 취급되는 DNA의 위험성을 적시한 작품입니다. 여기에다 여성혐오, 개인정보, 다크웹, 사이버 스토킹, 연쇄살인 등 다양한 코드들이 믹스되면서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 중에서도 단연 두드러지는 사회파 스릴러의 서사를 선보입니다. 2023년에 읽은 유명 작가의 스릴러에서도 페어 워닝과 비슷한 방식으로 DNA 문제를 다룬 적이 있는데, 아직 한국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지만 언제라도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묵직하면서도 서늘한 경고처럼 읽혔습니다.

 

50대에 이른 잭과 레이철은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특종에 목을 매는 통속적인 기자지만 잭은 정의를 구현하는 일에 매정하지 않은 캐릭터입니다. 과거 조연으로 등장한 작품에서 얄미운 3류 기자로 묘사된 적도 있지만 나름 나이만큼 성숙해졌다고 할까요? 레이철을 향한 꺼지지 않는 지고지순한(?) 감정도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불미스러운 일로 FBI를 그만두고 지금은 사람들 뒷조사로 먹고살지만 레이철의 프로파일러로서의 본능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잭의 요청으로 오랜만에 사건에 뛰어든 레이철은 그녀 특유의 매력을 발산하며 과거의 전성기를 다시 한 번 독자에게 선보입니다.

 

페어 워닝의 엔딩은 두 사람의 미래에 관해 꽤 눈길을 끄는 떡밥을 남겨놓습니다. 물론 이 작품이 출간된 2020년 이후 새로운 잭 매커보이 시리즈가 나오진 않았지만, 언젠가는 잭과 레이철의 멋진 활약을 다시 한 번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라면 그 시기가 너무 늦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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