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45분 열차에서의 고백
리사 엉거 지음, 최필원 옮김 / 황금시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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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하던 보모 제네바가 남편 그레이엄과 불륜 관계임을 알게 된 셀레나는 절망에 사로잡힙니다. 너무나도 큰 충격에 빠진 나머지 통근열차에서 만난 낯선 여자 마사가 직장상사와 불륜 중이라는 고백을 해오자 자기도 모르게 남편과 보모의 불륜을 털어놓았던 셀레나는 얼마 후 제네바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열차에서 들은 마사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며 한기를 느낍니다. “그 여자가 그냥 사라져줄 수도 있지 않겠어요?” 우연의 일치인지 혹은 실제로 마사라는 여자가 제네바의 실종과 관련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셀레나의 불안감은 날로 커져갑니다. 한편 그레이엄의 불륜 사실을 알아낸 경찰은 제네바 실종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그레이엄과 셀레나를 주목합니다. 하지만 셀레나는 마사에 관해선 일체 감추기로 결심합니다.

 

출간 당시 이 작품을 읽을 목록에 올리지 않았던 건 단 한 가지 이유, 도메스틱 스릴러였기 때문입니다. 한때 홍수처럼 쏟아져 피로도가 높아진 탓에 어지간히 눈에 띄는 줄거리가 아니라면 일단 보류해왔는데, 네이버 카페 러니의 스릴러 월드에서 202310대 스릴러로 뽑힌 걸 보곤 한번쯤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셀레나의 삶이 순식간에 뒤흔들린 건 그녀가 남편 그레이엄과 불륜 중이었다는 점과 열차에서 만난 미지의 여자 마사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은 점 때문입니다. 오로지 가정을 지켜야 된다는 압박감에 이미 여러 차례 성추문을 일으킨 그레이엄을 용서해왔던 셀레나는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만, 하필 불륜 상대가 실종된 탓에 경찰이 개입하는 지경에 이르자 또 다시 그레이엄의 추태를 감추기로 결심합니다. 문제는 자신 외에 그레이엄의 불륜을 아는 사람이 또 한 명 있다는 점.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마사에게 자신의 불행을 들려준 일이 몹시도 신경 쓰이던 셀레나는 어느 날 마사로부터 만나자는 문자를 받자 깜짝 놀랍니다.

 

남편의 불륜과 보모의 실종으로 인한 경찰의 압박, 그리고 미지의 여자에 대한 의문과 두려움 등 셀레나의 이야기가 긴박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15살 소녀 펄에 관한 이야기가 나란히 병행됩니다. 수시로 남자를 갈아치우는 엄마에 대한 원망, 그런 엄마의 새남자로 보이는 서점직원 찰리에 대한 의심, 그리고 누군지 알 수 없는 친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증오 등 펄이 겪는 롤러코스터 같은 삶이 불온한 분위기와 함께 긴장감을 끌어올립니다. 셀레나의 이야기와 펄의 이야기는 중반부 이후 예기치 못한 반전과 함께 접점을 이룹니다. 셀레나의 공포와 분노를 극에 달하게 만드는 대목이자 제네바 실종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단계이기도 한데 이 무렵부터 이야기는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사실 스포일러가 될 여지가 너무 많아서 초중반 이후의 내용이나 설정에 관해선 언급하기가 무척 곤란한 작품입니다. 열차에서 만난 마사라는 여자의 정체, 의문투성이인 제네바의 실종, 가정과 삶의 붕괴에 고통스러워하는 셀레나의 비밀과 거짓말, 그리고 15살 소녀 펄이 이후 어떤 사건들을 겪으며 어른으로 성장하는가 등 초반부터 독자에게 던져진 궁금증들이 아주 천천히 양파 껍질처럼 하나씩 벗겨지며 공개되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의 서평들 가운데 뜻하지 않게 대형 스포일러가 담긴 경우가 있을 수도 있으니 아직 읽지 않은 독자라면 인터넷 서점의 출판사 소개글 정도만 참고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도메스틱 스릴러의 외형을 지녔지만 서스펜스+심리스릴러의 미덕까지 갖춘 작품이라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운 책읽기가 됐습니다. 특히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사건보다 캐릭터의 힘으로 끌고 간 작가의 필력은 대단해 보였습니다. 리사 엉거는 스무 편 이상의 작품을 펴낸 베테랑 작가라고 하는데, 이전까지 한국에는 2008년에 출간된 아름다운 거짓말한 편이 전부라서 무척 의외였습니다. 그녀의 전공이 도메스틱 스릴러라면 살짝 아쉬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다 해도 신간 소식이 들리면 관심을 갖고 지켜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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