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보내는 도전장
아쓰카와 다쓰미.샤센도 유키 지음, 김은모 외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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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스터리를 부러워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건 화수분마냥 개성 강한 작가들을 끊임없이 탄생시키는 탄탄한 문화적 기반입니다. 그 기반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하위 장르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기획을 발굴하는 노력일 텐데 그런 점에서 당신에게 보내는 도전장은 일본 미스터리의 또 다른 매력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쓰카와 다쓰미와 샤센도 유키는 각각 94년생, 93년생으로 현재 일본에서 각광받는 신인작가라고 합니다. 아직 작품을 읽은 적이 없어서 두 사람의 장점이나 매력을 잘 알지 못하지만 경작(출판사의 표현인데 아마 겨루기혹은 경쟁의 의미를 담은 競作이 아닐까 싶습니다)이라 부를 만한 독특한 기획에 초대받은 걸 보면 주목받는 신예임엔 분명한 것 같습니다.

두 작가가 쓴 두 편의 중편이 실려 있는데 동일한 주제로 이야기를 자아내는 앤솔로지와 달리 두 중편은 제목 그대로 서로에게 보낸 도전장에 답한 소설입니다. 즉 미스터리의 일부만 담긴 도전장을 받은 작가는 그 일부를 모티브 삼아 온전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언뜻 재미있어 보이는 기획이지만 비슷한 경력의 동 시대 작가 두 사람이 도전장에 걸맞은 완성도 높은 작품을 집필한다는 건 실은 무척 부담스러운 미션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선지 독자 입장에서도 일반적인 책읽기와 달리 꽤나 긴장된 상태로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습니다.

 

수조성의 살인은 샤센도 유키가 보낸 도전장에 아쓰카와 다쓰미가 답한 본격 미스터리입니다. 특이하게 생긴 게스트하우스 수조성에서 벌어진 불가해한 밀실살인을 다룹니다. 이웃에 사는 두 부부는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수조성을 찾았지만 원인 모를 화재 이후 칼에 찔린 시신이 발견된 사건 때문에 충격에 빠집니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 방화셔터와 초대형 수조 사이의 밀실로 어떻게 해도 피해자를 죽인 범인이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입니다. 만담 커플을 떠올리게 하는 두 명의 형사가 추리에 추리를 거듭한 끝에 누구도 예상하기 힘든 진실을 찾아냅니다.

 

흔한 잠은 아쓰카와 다쓰미가 보낸 도전장에 샤센도 유키가 답한 작품입니다. 뛰어난 미술 재능과 외모는 물론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인 여동생 지유리로 인해 가즈히사의 학창시절은 꽤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성인이 되어 독립한 가즈히사는 의식적으로 지유리를 멀리 해왔는데, 어느 날 미대 입시를 치르기 위해 도쿄에 온 지유리가 며칠 묵겠다며 집으로 쳐들어오자 당황합니다. 그리고 하필 그날 밤 가즈히사가 근무하는 호텔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특이한 건 범인이 자신이 살해한 희생자 옆 침대에서 하룻밤을 자고 갔다는 사실입니다. 가즈히사는 살해된 자의 정체를 알고 큰 충격에 빠짐과 동시에 직접 미스터리를 풀기로 결심합니다.

 

수조성의 살인이 밀실 트릭에 충실한 본격 미스터리라면 흔한 잠은 애틋하고 안쓰러운 여운을 남기는 감성적인 미스터리입니다. 말하자면 상대가 보낸 도전장에 대해 자기만의 스타일로 요리한 미스터리로 답했다는 점에서 독자는 맛과 모양이 전혀 다른 두 가지 음식을 한 번에 맛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용만 놓고 보면 수조성의 살인의 경우 트릭이 다소 작위적으로 보인 점이 아쉬웠고, ‘흔한 잠은 미묘한 관계로 엮인 두 남매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 반면 미스터리 자체는 단선적으로 설정된 게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내용보다 더 아쉬웠던 건 두 작가의 장점과 매력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이 작품의 진가를 좀더 진하게 음미할 수 있었을 텐데 전작들을 읽어보지 못해 좋은 기회를 놓친 점입니다.

 

아직 많은 편수는 아니지만 한국에 출간된 두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어보려고 합니다. 그런 뒤에 당신에게 보내는 도전장을 다시 읽으면 상대의 도전장에 부응하여 내놓은 두 작가의 작품의 미덕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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