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 도쿄 하우스
마리 유키코 지음, 김현화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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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방송국 개국 60주년 특별기획으로 ‘1961 도쿄 하우스라는 리얼리티 쇼가 제작됩니다. 1961년의 생활상을 그대로 구현한 집합주택 단지에서 불편함을 무릅쓰고 3개월을 살아내기만 하면 500만 엔이라는 거금의 출연료가 주어집니다. 원래는 가난해도 희망과 웃음이 흘러넘치던 살기 좋은 옛 시대를 만끽하는 리얼리티 쇼였지만, 제작회의가 거듭되면서 자극적인 구도와 갈등 조장 등 시청률을 위한 설정들이 가미됩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은 두 가족 나카하라, 고이케 은 이름과 성격까지 바꿔달라는 제작진의 기이한 요구를 수용하며 집합주택 단지로 이사합니다. 그리고 카메라에 둘러싸인 채 3개월간의 불편한 옛 생활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출연자 한 명이 살해된 채 발견되면서 리얼리티 쇼는 파국을 맞이합니다.

 

한국에 소개된 마리 유키코의 작품이 모두 일곱 편인데, 2016년 처음 소개된 고충증을 제외하고는 모든 작품을 읽었으니 나름 팬이라 자처할 만하지만, 실은 신간이 나오면 빨리 읽고 싶어 안달 나는그런 팬이어서가 아니라 읽고 나면 불쾌해져서 더는 읽고 싶지 않은데 왠지 모르게 자꾸만 끌리는탓에 읽다 보니 어느 새 대부분의 작품을 읽어버린, 좀 이상한 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크 미스터리의 여왕혹은 이먀미스의 여왕이라 불리는 그녀의 마력에 속수무책으로 끌렸다고 할까요?

 

시작부터 어둡고 음울한 게 마리 유키코의 특징인데, ‘1961 도쿄 하우스는 리얼리티 쇼라는 소재 때문인지 전작들과는 달리 가볍고 경쾌하게 출발합니다. 혹시나 마리 유키코의 전혀 다른 스타일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지만 초반을 벗어나자마자 리얼리티 쇼 이면에 자리 한 갖가지 탐욕과 일그러진 감정들이 슬쩍슬쩍 그려지면서 예의 불길함과 긴장감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리얼리티 쇼를 준비하는 제작자들 일부에게서 다른 의도가 감지됐고, 쇼의 무대인 재건축을 앞둔 쇼와 시대의 집합주택 단지자체도 뭔가 어두운 과거를 숨기는 듯한 인상을 발산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실제 1961년에 이 단지에서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졌다는 정보가 독자와 일부 등장인물에게만 노출되면서 그 사건이 이 리얼리티 쇼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무척 궁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예상치 못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쇼는 일단 중단됩니다. 하지만 진짜 쇼는 그때부터 시작되고 거듭되는 사건과 연이은 반전이 폭죽처럼 터집니다. 독자 입장에선 은밀한 의도를 가진 채 이 리얼리티 쇼를 이용하려는 진범이 누굴까 짐작해보게 되는데, 문제는 챕터가 바뀔 때마다 그 짐작이 여지없이 빗나간다는 점입니다. 또한 쇼를 기획하고 준비했던 일부 인물, 그러니까 모든 걸 알고 있어야 할 인물들조차 예상치 못한 전개에 진심으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곤 해서 독자로선 진범의 진짜 시나리오가 무엇인지 도무지 가늠하기 어렵게 됩니다.

 

마리 유키코의 전작들이 미스터리 자체보다는 지독하리만치 불편하고 어두운 감정과 심리를 그리는데 주력했다면 ‘1961 도쿄 하우스누가, ?”에 충실한 정통 미스터리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거듭되는 사건과 반전들은 평소 마리 유키코와 담을 쌓았던 독자들도 좋아할 만큼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으로 구축돼있어서 그녀에 대한 선입관을 확 바꿔놓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녀 특유의 다크 미스터리와 이야미스는 여전하지만 말입니다.

 

외면하고 싶으면서도 미지의 힘에 이끌려 꾸역꾸역 찾아 읽은 작품들이라 그런지 그동안 읽은 마리 유키코의 작품에게는 모두 별 4개만 주고 말았는데, 이번에는 미스터리의 만족도가 무척 높았던 덕분에 0.5개를 더했습니다. 몇몇 애매모호한 설명 때문에 만점을 주지 못한 건 아쉽지만 그래도 마리 유키코의 새로운 진면목을 발견한 것 같아 꽤 만족스러운 책읽기였습니다. 아마 다음 신작 소식을 듣게 되면 그때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그녀의 작품을 집어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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