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협주곡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5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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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던 30년 전 어린 소녀를 토막 살해하여 시체배달부라는 별명을 얻었던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를 징계하라는 일반인들의 청구가 봇물처럼 쏟아집니다. 하지만 미코시바는 오히려 그들을 향해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합니다. 그런 와중에 사무소 직원 구사카베 요코가 갑자기 연인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됩니다. 더구나 흉기에서 그녀의 지문이 발견된 탓에 곧바로 구치소에 수감되고 맙니다. 미코시바는 자네가 살인을 저질렀든 저지르지 않았든 반드시 꺼낸다.”는 말과 함께 조사를 시작하지만 이내 자신이 요코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녀에게 누명을 씌운 자를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요코의 과거를 캐던 미코시바는 그녀가 30년 전 자신이 토막살인을 저질렀던 곳에 살았던 사실을 알아내곤 큰 충격에 빠집니다.

 

“‘시체배달부였던 미코시바의 캐릭터가 이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인 건 분명하지만, 개인적으론 더는 그 과거 자체가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계속 그 과거에만 함몰된다면 어떤 사건이 등장하든 동어반복이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2019년에 출간된 시리즈 네 번째 작품 악덕의 윤무곡을 읽고 쓴 서평의 마지막 대목입니다. 그때만 해도 진심으로 더는 과거와 얽히지 않은 사건들을 다루기를 바랐지만, ‘복수의 협주곡을 읽고 나니 실은 이 시리즈 자체가 미코시바 레이지의 갱생과 속죄를 다룬 하나의 거대한 서사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즉 그의 과거가 얽히지 않은 사건은 이 시리즈에서 다룰 이유가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할까요? 그래선지 30년 전 그가 저지른 토막살인이 그 어느 때보다 정면으로 다뤄진 복수의 협주곡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겨줬습니다.

 

미코시바의 미션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블로그를 통해 일반인들을 끌어 모아 자신을 징계하라고 청구한 블로거를 찾아내는 것은 물론 징계청구자 전원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익명을 이용하여 제멋대로 선의니 정의니 떠드는 자들에 대한 지독한 혐오를 감추지 않는 것은 물론 현실적인 이익까지 얻어내려는 미코시바다운 대응입니다. 또 하나는 살인혐의로 체포된 사무소 직원 구사카베 요코의 무죄를 입증하는 것입니다. 유일무이한 직원이지만 미코시바는 그녀에게 조금도 사적인 감정이 없습니다. 오히려 직원할인을 받을 수 있는 의뢰인으로만 취급할 뿐입니다. “자네가 살인을 저질렀든 저지르지 않았든 반드시 꺼낸다.”는 건 그녀를 아끼고 지켜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평소 의뢰인을 대하는 미코시바의 태도이기 때문에 나온 말일 뿐입니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미코시바를 당황하게 만든 건 자신이 요코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녀의 고향도, 가족도, 살아온 이력도 전혀 몰랐던 미코시바는 누명을 씌울 만큼 원한 관계에 있는 자를 찾아내기 위해 요코의 과거를 캐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알게 된 그녀의 과거 30년 전 자신과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점 - 는 미코시바를 큰 충격에 빠뜨립니다. 요코의 과거를 캐는 일은 곧 자신이 30년 전에 저지른 토막살인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요코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미코시바가 품은 의문은 거의 마지막 장에 가서야 풀리는데, 그 해답 역시 미코시바를 꽤나 놀라게 만듭니다.

 

요코의 무죄를 입증하는 과정은 다소 싱겁게 전개되고, 미코시바의 추리도 홀로 폭주하는 경향이 있어서 막판에 힘이 살짝 빠진 건 사실이지만, 미코시바가 지목한 진범의 정체는 다시 한 번 독자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시리즈가 미코시바 레이지의 갱생과 속죄를 다룬 하나의 거대한 서사라는 점을 절감하게 만듭니다. 다 읽고 복기해보면 미코시바의 탐문과 조사는 실은 30년 전 자신이 저지른 사건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고통스런 과정이었고, 요코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또 하나의 속죄의 계단을 올랐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서사는 단순하지만 속죄라는 주제는 그 어느 작품보다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20233월에 일본에서 시리즈 여섯 번째 작품 살육의 광시곡이 출간됐다고 합니다. 노인 요양센터에서 9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최악의 피고를 변호한다는데 과연 어떤 접점을 통해 미코시바의 속죄와 연결될지 쉽게 예상하기가 어렵습니다. 늦어도 내년 하반기에는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조금이라도 빨리 출간되기를 조심스레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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