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품집 : 2023 제17회 나비클럽 소설선
박소해 / 나비클럽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동안 이름만 들어왔던 황금펜상 수상작품집을 처음으로 읽게 됐습니다. 한 해 동안(202211~202310) 문예지와 단행본에 발표된 단편 추리소설 가운데 수상작과 우수작을 뽑은 작품집으로 한국 추리소설의 현 주소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무척 기대가 됐습니다. 아직 그 이름이 생소한 작가들부터 서미애, 홍정기, 송시우 등 낯익은 작가까지 포진해있어서 예전에 유명작가와 신인작가들의 작품을 동시에 맛볼 수 있었던 황금가지의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수상작인 박소해의 해녀의 아들은 팔순이 넘은 한 해녀의 죽음에서 출발하여 그녀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며 70여 년 전의 비극 제주 4.3사건을 재조명한 작품입니다. 여전히 그 상처가 현재 진행형인 역사적 비극을 미스터리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무척 의미 있는 작업으로 보였습니다. 미스터리 자체는 복잡하거나 정교하게 설계되진 않았지만 과거와 현재의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러 인물들의 심리가 돋보인 작품입니다. 그 외의 우수작들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서미애 죽일 생각은 없었어

독초를 기르던 할머니 품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누구에게나 세상을 살아가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라는 말을 마음에 새겼던 주희는 어른으로 성장하며 본투킬 살인마로 진화합니다.

냉정과 열정을 모두 갖춘 여성 빌런 주희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가 기대됨.

 

김영민 ‘40피트 건물 괴사건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인적이 사라진 마을에 도착한 대학 사진클럽 멤버들은 기괴하게 생긴 건물에서 중년여자의 시신을 발견하곤 각자의 방식으로 추리를 전개시킵니다.

초반 설정은 흥미롭지만 다소 아쉬웠던 미스터리의 해법과 엔딩.

 

여실지 꽃은 알고 있다

다양한 꽃과 식물이 자라는 마당 딸린 집. 히키코모리이자 불치병 환자인 와 그 가족들은 그곳에서 점차 몰락과 붕괴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스티븐 킹의 공포물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불온한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는 이야기.

 

홍선주 연모

사이코패스로 불리는 한 여고생과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 교생이 9년 만에 재회하여 벌이는 로맨스 심리극입니다.

사이코패스의 새로운 면모를 맛볼 수 있었던 작품.

 

홍정기 팔각관의 비밀

대기업 회장 박순찬의 생일잔치 도중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참석자들은 모두 죽은 자에게 살의를 품고 있었고, 현장은 기이한 형태의 팔각관이어서 진범을 특정하기 쉽지 않습니다.

십각관의 비밀을 떠올리게 하는 미스터리. 단편보다는 장편에 어울리는 설정.

 

송시우 알렉산드리아의 겨울

한 초등학생이 납치 살해당한 뒤 손목이 사라진 채 발견됩니다. 유력한 용의자가 범행을 부인하는 가운데 이른바 자기 캐릭터 커뮤니티라는 온라인 역할극이 수사진의 관심을 끕니다.

역시 단편보다는 장편에 어울리는 미스터리. 서사도 탄탄하고 미스터리도 쫄깃.

 

단편 특유의 맛과 다양한 소재 덕분에 꽤 풍성한 식탁이 차려지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평하자면 아쉬움이 좀 많이 남았습니다. 무엇보다 추리문학상이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을 법한 미스터리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쉽거나 평범해 보였고 때론 수상집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추리보다는 스릴러나 서스펜스로 분류될 작품이 적지 않았던 것도 아쉬웠던 점입니다.

하지만 장편으로 확대하거나 뒷이야기가 궁금해진 수록작도 있었는데, 송시우의 알렉산드리아의 겨울과 서미애의 죽일 생각은 없었어는 작가의 내공과 함께 흥미진진한 서사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여러 작가의 작품이 함께 수록된 수상집이라 한 편 한 편 긴 코멘트를 달기는 어려워서 전체적인 인상밖에 언급할 수 없었지만, 애초 가졌던 한국 추리소설의 현 주소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기대에는 조금은 부응하지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내년 이맘때 출간될 18번째 수상집에서는 좀더 탄탄하고 신선한 미스터리 단편들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