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여름
소메이 다메히토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사키 마모루는 지방도시의 사회복지사로 근무 중인 26세의 공무원입니다. 생활보호대상자를 선정하고 부정수급자를 가려내는 고된 업무를 근근이 이어나가던 마모루는 어느 날 큰 충격에 빠집니다. 선배 사회복지사 다카노가 약점을 지닌 여성 생활보호대상자를 협박하여 육체관계는 물론 돈까지 뜯어낸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한편 도쿄에서 사고를 치고 지방도시로 쫓겨난 야쿠자 가네모토 역시 다카노의 비리를 알게 되는데, 그는 다카노를 이용하여 큰돈을 벌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면서 가네모토의 계획은 어그러질 상황에 처하고 마모루의 운명 역시 급격한 혼란에 휩싸이고 맙니다.

 

일가족을 살해한 18세 살인범의 도주극을 그린 정체’(한국 출간 2021)를 통해 한국 독자와 처음 만났던 소메이 다메히토가 37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우수상 수상작이자 자신의 데뷔작인 나쁜 여름으로 다시 한국 독자를 찾았습니다.

정체를 읽고 쓴 서평에 정갈하고 정성이 깃든 문장들과 인물 하나하나에 공을 들인 작가의 진심이란 표현을 썼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들었던 터라 그의 데뷔작을 꼭 읽고 싶었는데, 역시 이번에도 기대한 만큼의 만족스러운 책읽기가 됐습니다.

 

다소 극단적인 사례 같기는 해도 사회복지, 특히 생활보조금을 둘러싼 갖가지 사건과 사고를 다루고 있어서 정통 사회파 미스터리로 분류되겠지만, 소메이 다메히토는 거기에다 소네 케이스케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연상시키는, 웃을 수도 찌푸릴 수도 없는 희비극이자 폭주에 가까운 군상극의 미덕을 섞음으로써 독특한 장르물을 완성시켰습니다.

 

생활보호대상자를 선정하고 부정수급자를 가려내는 사회복지사, 말도 안 되는 변명과 핑계를 대며 부정하게 생활보조금을 타내면서도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인간망종들, 그리고 사회복지시스템의 작은 균열을 이용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야쿠자 등 나쁜 여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생활보조금의 이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동시에 실제로 복지의 혜택이 필요한 사람들이 정작 사각지대로 밀려나는 모습이라든가 정책 자체는 훌륭하더라도 그것이 현실에서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를 묘사한 대목들은 그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 적 없는 독자에게 꽤 큰 경종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매력은 사회복지라는 거창한 주제가 아니라 서로 속고 속이는 것을 넘어 이기심을 위해서라면 최악의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 인간망종들의 먹고 먹히는 쇼에 있습니다. 아마 영화로 만들면 숨 쉴 틈조차 없을 정도로 폭주하면서도 흥미진진한 B급 영화의 미덕을 만끽할 수 있는 명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일본 영화감독 소노 시온의 지옥이 뭐가 나빠를 아는 독자라면 어떤 느낌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막판 클라이맥스는 피와 흉기가 난무하는 끔찍한 비극의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웃는 것까지는 어렵더라도) 왠지 희극의 냄새가 더 강하게 풍기는 묘한 감정을 느끼게 만듭니다.

 

정체나쁜 여름모두 적잖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이지만 소메이 다메히토는 비중이 적은 단역이나 조연조차 독자에게 그 존재의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이야기 속에 확실히 녹여냅니다. 자칫 우왕좌왕할 수 있는 복잡한 구도를 개성 넘치고 명확한 캐릭터를 지닌 인물들을 통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컨트롤한다고 할까요? 그래선지 다음에 만날 그의 작품 역시 희극이자 비극이면서 통렬한 군상극이기를 바라게 됩니다. 일본에서는 모두 8편의 작품을 출간했는데, 그의 나머지 작품들도 머잖아 한국에 모두 소개됐으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