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없는 검사의 분투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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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재단, 재무공무원, 국회의원까지 연루된 국유지 헐값 매각 사건이 오사카지검을 긴장하게 만듭니다. 수사결과에 따라 정권을 위협하는 대형스캔들로도 비화할 수 있는 사건이라 오사카지검은 특수부를 비롯하여 유능한 검사들을 다수 투입하지만, 얼마 후 특수부 검사 한 명이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오사카지검은 패닉에 빠집니다. 수년 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고 그때 바닥까지 추락한 지검의 신뢰는 아직도 회복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대검에서 조사팀을 투입하기에 이르렀고, 그때까지 특수부 파견을 거부해온 오사카지검의 에이스 후와 슌타로는 지검장의 명령으로 대검 조사팀과 함께 진실 찾기에 나섭니다.

 

2020년에 한국에 출간된 표정 없는 검사에 이은 후와 슌타로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일본에서는 2021년에 출간됐던 터라 곧 만나볼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거의 3년이 지난 후에야 한국 독자를 찾아왔습니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주인공들 대부분이 비범한 캐릭터를 지니고 있지만 후와 슌타로는 이른바 能面檢事’, 즉 일본 전통극 ’()에 쓰이는 가면을 쓴 듯 그 표정에 전혀 변화가 없는 기계와도 같은 얼굴을 지니고 있어서 더 도드라져 보입니다. 뛰어난 능력 덕분에 오사카지검의 에이스라 불리면서도 후와는 상대를 가리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과 차가운 말투 때문에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인물입니다. 하지만 과거 도쿄지검 재직 시 저지른 최악의 실책 이후 제대로 된 사법기관으로서 역할하기 위해 표정을 지웠을 뿐 그는 타고난 반골은 아닙니다.

그와 반대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기분은 어떤지, 좀전에 뭘 했는지 등 그야말로 머릿속의 모든 것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무관 소료 미하루가 후와의 곁을 지킵니다. 1편에서 후와의 사무관으로 배속된 이후 숱한 좌절과 절망을 겪으면서도 1년 가까운 시간을 견뎌내긴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후와의 일거수일투족에 놀라고, 당황하고, 허둥댑니다.

 

1편에서 오사카 경찰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던 후와가 이번에 상대하는 건 자신이 속한 조직인 검찰입니다. 수년 전 세상을 놀라게 했던 특수부 검사의 증거조작이 또다시 되풀이되면서 오사카지검은 궁지에 몰렸고, 대검의 조사팀에게 지검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처지에 빠집니다. 그런데 대검 조사팀 중 한 명인 도쿄지검 차장검사 미사키는 과거 자신의 부하였던 후와를 수사에 합류시켰고, 결과적으로 후와는 대검 조사팀의 일원이 되어 오사카지검의 동료를 조사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합니다. 성과를 올릴 경우 동료를 욕보인 원흉이 될 것이고, 실패할 경우에도 오사카지검의 공중분해를 야기한 주범이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후와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진실 찾기에 나서겠다고 대응했고, 실제로 그는 주위에서 놀랄 정도로 냉정하게 조사를 진행합니다. 문제는 그가 조사해야 하는 대상도 검사이고, 시기심과 공명심에 사로잡혀 그를 비난하고 견제하는 것도 검사라는 점입니다. 말 그대로 검사가 벌이는 검사와의 전쟁이라고 할까요?

 

다소 딱딱하고 어려운 용어들이 난무하는 국유지 헐값 매각 사건과 증거조작 사건은 중반 이후 후와와 미하루의 현장 조사를 통해 과거의 다른 사건과 맥이 닿으면서 급물살을 탑니다. 이 대목이 살짝 비약처럼 느껴지긴 했지만, 집요한 탐문과 현장조사를 통해 후와가 알아낸 진실은 원래 사건에선 도저히 유추할 수 없었던 소소한 감동과 안타까움을 선사합니다. 나카야마 시치리 특유의 연속 반전의 쾌감과 함께 말입니다. 물론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회의실에 앉아서 후와의 공을 훔치고 오사카지검을 공중분해시키려던 대검 조사팀을 제대로 물 먹이는 일도 잊지 않습니다. (애초 후와를 조사팀에 끌어들인 도쿄지검 차장검사 미사키는 이 작품에서 거의 유일하게 좋은 검사로 활약하는데, 그는 나카야마 시치리의 또다른 주인공 미사키 요스케의 아버지로 밝혀집니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자신들의 업무를 소홀히 하는 공무원들이 심심치 않게 언론과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와중에 영웅 같은 공무원이 활약하는 작품을 쓰는 것이 대중 소설가의 책무라고 집필의도를 밝힌 바 있는데, 요즘의 한국 상황을 보면 후와 같은 검사가 한 명쯤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수밖에 없습니다. ‘표정 없는 검사 후와 슌타로 시리즈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두 작품쯤은 더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옮긴이의 말에 나온 것처럼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신념 투철한 사법기계의 활약은 언제 읽어도 속 시원한 사이다처럼 짜릿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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