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유괴 붉은 박물관 시리즈 2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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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른 탓에 하루아침에 경시청 수사1과에서 한직 중의 한직인 경시청 부속 범죄자료관, 일명 붉은 박물관으로 추락한 데라다 사토시와 경찰로서 뛰어난 스펙은 물론 천재적인 추리능력까지 지녔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수년째 붉은 박물관관장으로 살아가고 있는 히이로 사에코 콤비의 두 번째 이야기로 모두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된 작품입니다.

 

붉은 박물관의 원래 목적은 미결 혹은 종결된 형사사건의 증거품과 수사 서류를 보관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곳에서는 간혹 이 사건의 재수사를 실시한다!”라는 사에코의 목소리가 울려퍼지곤 합니다. 사에코는 과거의 자료들 속에서 의문점을 발견하거나 위화감이 느껴지면 그것이 미제사건이든 이미 시효가 지난 사건이든 관계없이 기어이 재수사를 감행하는 것입니다. 다만, “나는 이 붉은 박물관이 법망을 피해 도망치는 범인을 막아내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한다.”라는 멋진 사명감을 갖고 있긴 해도 의사소통능력 자체가 거의 제로에 가까운 탓에 탐문은 아예 불가능한 4차원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로 아직 초짜 티를 벗진 못한데다 비록 좌천되긴 했어도 수사1과 출신의 자부심을 품고 있는 사토시가 그녀의 곁을 지키며 현장 조사와 탐문을 도맡습니다.

 

사에코의 추리는 대범하다 못해 기괴하다는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망상에 가까운 추리력을 발휘할 때마다 사토시가 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발상인가?”라고 탄식을 내뱉곤 하는데, 그것은 곧 독자의 심정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긴 사건의 대전제들을 180도 뒤집는가 하면, 애초 상상 자체가 불가능한 추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지다가 곧바로 진상에 도달하곤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에코의 기행이야말로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이자 미덕이기도 합니다. 본격과 트릭의 향연을 맛깔나게 만들어주는 결정적인 소스라고 할까요?

 

시리즈 첫 편인 붉은 박물관에서 사에코에게 하도 여러 차례 놀란 덕분인지, 두 번째 작품인 기억 속의 유괴는 조금은 더 객관적이고 차분하게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다섯 편의 수록작 중 한 편은 (비록 과정까지는 제대로 맞히지 못했지만) 중반쯤 범인의 윤곽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전작의 교훈을 제대로 숙지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수록작에서 사에코의 파격적인 추리는 여전히 빛났고, “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발상인가?”라는 독자와 사토시의 탄식 역시 매작품마다 반복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작인 붉은 박물관서평에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별 0.5개를 뺀 건 사에코의 비범한 능력이 종종 과도한 비약처럼 보였기 때문.”이라고 썼는데, ‘기억 속의 유괴역시 비슷한 느낌입니다. 물론 붉은 박물관보다는 훨씬 더 현실감 있고 안정적으로 읽혔지만 아무래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비약하는 사에코의 모습에서 살짝 이물감이 느껴진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만 역설적이게도 비약 없는 사에코였다면 과연 이만큼 재미있게 읽혔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아직 보진 못했지만 붉은 박물관수록작 중 일부가 TV드라마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기억 속의 유괴에도 영상화가 기대되는 수록작들이 몇 편 있습니다. 의문의 연쇄방화범을 그린 연화와 기이한 유괴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표제작 기억 속의 유괴가 가장 기대됐고, 영상화가 쉽진 않겠지만 본격의 맛이 잘 살아있는 황혼의 옥상에서역시 드라마로 보고 싶어진 작품입니다.

 

본격과 트릭의 향연에 4차원 천재와 어리바리 형사의 콤비 플레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이 일본에서 20221월에 출간됐으니 어쩌면 1~2년 안에 그들의 세 번째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단편이지만 설계와 구성에 적잖은 공이 필요한 작품들이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새 작품과 만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리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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