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을 걷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110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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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와 가스의 노다지로 알려진 노스다코타주의 소도시 런던에서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자 FBI는 에이머스 데커와 파트너 알렉스 재미슨을 파견합니다. FBI가 개입할 만한 사건으로 보이지 않은데다 정작 데커와 재미슨조차도 자신들이 파견된 정확한 이유를 모릅니다. 문제는 수사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 살인과 실종사건이 연이어 벌어진 점입니다. 데커와 재미슨은 살인사건 외에도 불온한 기운이 감도는 런던의 분위기에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사방에서 석유 시추가 이뤄지고 가스의 불기둥이 치솟는가 하면, 오래된 공군기지는 철저한 경비 속에 음모가 도사리는 듯 보였고, 인접한 종교단체 역시 전혀 순수하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석유와 가스가 창출한 부를 놓고 노골적인 갈등을 빚는 지역유지들 역시 수상해 보일 뿐입니다. 수사가 난항을 겪는 사이 데커는 누군가의 기습공격으로 큰 위기에 빠집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이머스 데커의 여섯 번째 이야기로, 전작인 진실에 갇힌 남자이후 (한국 기준으로) 3년 만에 출간된 작품입니다. 미식축구선수 시절 엄청난 부상과 함께 과잉기억증후군공감각이라는 증상을 얻은 데커는 이후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FBI에서 일하게 됐고, 자신만의 특별한 능력을 통해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해결해왔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데커는 그 특별한 능력을 발휘한다기보다 발군의 추리력과 순발력으로 다양한 사건들을 해결합니다. 재미있는 건 노스다코타주의 소도시 런던이 데커에게 내민 숙제가 꽤나 복잡해 보인다는 점입니다. 모두 연관된 것 같지만 달리 보면 전혀 별개의 것으로 보이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데커 앞에서 폭발하기 때문입니다.

 

데커는 재미슨과 함께 런던에 파견된 첫 번째 이유, 즉 한 여성의 죽음에 몰입하려 하지만, 세기말적 풍경을 자아내는 석유 시추시설, 지금은 그 용도가 불분명한 오랜 공군기지, 비밀을 감추는 듯한 종교단체, 그리고 호황과 불황을 거듭해 온 런던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여온 지역유지 등 혼란스러운 상황들 때문에 좀처럼 수사의 실마리를 찾지 못합니다. 특히 정체불명의 청부살인업자가 자신을 노린 일도, 또 위기의 순간 느닷없이 나타나 자신을 구해준 인물의 등장도 데커의 수사 방향에 혼란만 가중시킵니다. 한 여성의 죽음의 배경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감조차 잡기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읽은 그 어느 작품보다 사선을 걷는 남자는 복잡한 설계도를 지닌 작품입니다. 꽤 많은 사람이 죽거나 실종되거나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지는데, 이 많은 사건들이 전부 제각각의 단서를 남기는 바람에 하필데커가 와있는 중에 공교롭게도 사건들이 한꺼번에 일어난 건지, 아니면 그 많은 사건들이 실은 한 뿌리에서 시작된, 모조리 연관된 사건들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제대로 따라가려면 메모장에 등장인물의 이름이라도 적어놓는 것이 유용할 수도 있습니다. 또 한 번에 마지막 장까지 달려야 이 작품의 참맛을 만끽할 수 있으니 바쁜 시간을 쪼개 나눠 읽기보다는 주말에 완주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사선을 걷는 남자에는 데커와 재미슨 콤비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바로 윌 로비와 제시카 릴 콤비입니다. 해외 관련 첩보기관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두 사람은 이번 작품에서 가공할 살상력과 무력을 선보이며 데커와 재미슨의 수호천사같은 역할을 맡습니다. 후속작에서도 이들이 데커의 도우미가 돼줄 지는 알 수 없지만 여러 모로 합이 잘 맞는 네 사람의 협업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워낙 서사의 판이 크고 복잡하게 짜여서 그런지 다른 어느 작품보다 집중력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다소 아쉬웠던 건 결정적인 순간마다 데커의 추리가 다소 지나치게 비약을 반복한 점입니다. “왜 갑자기 저런 생각이 떠올랐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데커의 추리는 동료들은 물론 독자마저 멀찌감치 떼어놓고 홀로 폭주하곤 합니다. 나중에 그에 대해 딱히 설명해주지도 않습니다. 그래선지 ... 그런 거였나?”라고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을 넘기곤 했는데, 흥분지수가 고조된 지점에서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조금은 아쉽게 느껴진 게 사실입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지만 별 0.5개를 뺀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인 ‘Long Shadows’2022년에 이미 출간됐습니다. 올해 한국에 처음 소개된 데이비드 발다치의 새 시리즈 ‘620분의 남자의 두 번째 작품도 기대되지만 에이머스 데커의 새 이야기도 빠른 시간 안에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들의 매력과 카리스마가 철철 넘쳐흐르기 때문인데 이왕이면 2024년 상반기에 두 작품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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