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아침의 나라
신원섭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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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개발업자 한병진은 자신이 소유한 땅과 맞붙어있는 미혼모 쉽터 사랑의 집의 부지를 탐내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하자 변칙적인 방법을 동원합니다. 경찰 출신 용역깡패 이진수를 섭외하여 사랑의 집운영자인 오유라의 비리를 파헤치도록 하고, 젊고 강직해 보이는 변호사 하나연을 자신이 급조한 시민단체의 대표로 영입한 것입니다. 시민운동가로서 명망을 얻고 있었지만 실은 오유라는 비리덩어리 그 자체였고, 이진수와 하나연을 통해 그 사실을 알아낸 한병진은 무난한 성공을 기대했지만, 시장을 비롯하여 권력자들과 단단하게 이어진 오유라의 저항은 만만치 않습니다. ‘땅 빼앗기로 시작된 작은 싸움은 어느 새 폭로전은 물론 피와 살이 튀는 무자비한 전쟁으로 확대됩니다.

 

2018년에 출간된 신원섭의 짐승은 각자의 욕망에 충실하지만 선택과 행동은 하나같이 짐승의 그것과 닮아있는 여섯 명의 인물을 등장시킨 흥미로운 군상극이자 매력적인 스릴러였습니다. 이후 몇 편의 앤솔로지에서만 그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던 신원섭이 5년 만에 새로운 장편을 펴내서 무척 기대가 됐습니다.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요란한 아침의 나라40년간 위성도시 베드타운이었지만 지금은 쇠락의 기운이 더 강하게 감도는 가양시를 무대로 한 작품으로, 전작과 마찬가지로 특정 주인공이 없는 속도감 넘치는 군상극이자 누아르의 기운이 짙게 밴 스릴러입니다. 이야기의 연속성은 전혀 없지만 전작에 등장했던 두 인물 - 경찰 출신 용역깡패 이진수, 재력가이자 시장의 최측근인 도미애 5년 만에 악연을 거듭하는 대목은 꽤 흥미로웠습니다.

 

자신이 소유한 땅의 진입로를 확보하기 위해 바로 옆 미혼모 쉼터의 부지가 필요했던 부동산 개발업자 한병진의 탐욕에서 시작된 땅 빼앗기 싸움은 그 상대가 시장을 비롯한 권력자들과 유대 관계가 깊은 사악한 시민운동가 오유라인 탓에 쉽사리 마무리되지 못하고 시간이 갈수록 점차 그 규모가 커져갑니다. 오유라 죽이기로 끝나는 싸움이 아니라 그녀의 동지들인 시장과 권력자들을 아군으로 만들거나 반대로 무너뜨려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싸움의 주체들은 하나같이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비열한 인물들입니다. 심지어 주인공인 깡패 이진수와 변호사 하나연 역시 악당은 아니더라도 정의나 선()과는 거리가 먼, 자기 욕망에 충실한 캐릭터들이라 독자 입장에서 딱히 이입하며 쫓아갈 인물이 없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런 군상극은 오히려 독자에게 상황 전체를 골고루 조망할 수 있게 만들어줘서 이야기 자체에 몰입하도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탐욕, 오만, 증오, 시기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맞이하는 파멸의 전 과정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설정이라고 할까요?

 

후반에 실린 해설을 보면 여성 누아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부패와 비리를 일삼는 사랑의 집대표 오유라, 정치적 야망을 숨기지 않는 시장 김주미, 시장의 귀찮은 일들을 은밀히 처리해주는 실력자 도미애, 인권변호사를 표방하지만 실은 부와 명예를 탐내는 현실주의자 하나연, 그리고 그루밍 성범죄의 피해자였던 나약한 미혼모에서 끝내 자신의 길을 찾아내고 마는 고영희에 이르기까지 이 작품의 주요 서사는 대부분 여성이 끌고 갑니다. 누아르의 별미인 폭력은 남성들의 몫이지만 그저 말 그대로 별미일 뿐 실제로 가양시에서 벌어진 참혹한 전쟁을 이끄는 것은 모두 여성입니다. 정작 읽을 때는 잘 못 느꼈던 점인데, 이 작품의 특별한 미덕이기도 하니 아직 읽지 않은 독자라면 이 점을 염두에 두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입니다.

 

아쉬운 점이 두 가지 정도였는데, 하나는 사랑의 집이슈가 너무 쉽게 전국적인 뉴스거리가 된다는 점(요즘 흉악한 뉴스가 워낙 많다 보니 가양시 정도에서 벌어진 흔하디흔한 비리에 전국적인 관심이 몰린다는 게 영 어색했습니다), 또 하나는 아직 이야기가 많이 남았을 것 같은데 막판에 너무 서둘러 마무리한 점입니다. 마지막 장까지 몇 장 남지 않았을 때 후속작 한 편 정도는 더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갑작스레 모든 상황이 종료되면서 을 보게 된 건 무척 아쉬웠습니다.

 

신작 소식을 기다리게 되는 한국의 장르물 작가 중 한 명이 신원섭입니다. 앤솔로지를 통해 꾸준한 활동을 해왔지만 아무래도 장편이 더 기대되는 작가입니다. 새로운 군상극도 괜찮고, 확실한 주인공이 끌고 가는 누아르도 괜찮으니 머잖아 그의 새 작품을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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