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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맨을 찾아서
리처드 치즈마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9월
평점 :
1988년 미국 메릴랜드주의 소도시 에지우드에서 참혹한 연쇄살인이 벌어집니다. 피해자는 모두 긴 머리의 10대 소녀들이었고, 참혹한 폭행을 당한 후 교살된 채 발견됩니다. 엽기적인 범행 때문에 언론에서는 범인에게 ‘부기맨’이라는 별명을 붙였고, 대대적인 수사가 소도시 에지우드를 휩쓸지만 범인은 작은 단서조차 남기지 않은 채 불규칙한 간격을 두고 범행을 이어갑니다. 범죄미스터리와 공포물 소설가의 길을 꿈꾸는 22살의 청년 리처드 치즈마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잠시 돌아온 고향에서 마주한 끔찍한 연쇄살인사건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물론 또래 기자인 칼리 올브라이트와 함께 ‘부기맨’의 뒤를 쫓기 시작합니다.
‘실화와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린 파격 범죄 스릴러’라는 띠지의 문구대로 ‘부기맨을 찾아서’는 범죄 실화를 추적하는 ‘르포’와 허구의 세계를 그리는 ‘소설’이 절묘하게 믹스된 작품입니다. 1988년 당시 22살이던 작가 리처드 치즈마가 자신의 고향 에지우드에서 직접 겪은 연쇄살인사건을 1인칭 시점의 서술과 함께 수십 장의 사진(피해자, 사건현장, 담당수사관 등)까지 동원하여 디테일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교과서적인 르포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동시에 소설로서의 미덕도 제대로 갖춘 특이한 작품이란 뜻입니다. “과연 어디까지가 실화고 어디까지가 허구인가? 이 독특한 형식의 소설을 십분 즐기고 싶다면 부디 첫 페이지부터 순차적으로 따라가 보라.”라는 출판사 소개글대로 일단은 화자인 22살 리처드 치즈마의 ‘부기맨 추적기’를 한 페이지씩 음미하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DNA 분석이 정교하지도, 신속하지도 않던 시기이기도 하지만,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범인의 행적 때문에 경찰은 미궁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라일 하퍼라는 훌륭한 수사관이 있긴 하지만 ‘부기맨’을 추적하는 역할은 주인공 치즈마와 기자 칼 리가 맡습니다. 치즈마가 장르물 소설가의 촉을 동원해 연쇄살인의 진상을 밝히려 한다면, 칼리는 정보원과 취재를 통해 경찰이 놓친 부분을 포착하려는 맹렬 기자로서 활약합니다. 또한 두 사람은 ‘부기맨’으로 보이는 자에게 직간접적으로 위협을 당하기도 하는데, 안 그래도 “범인은 에지우드 사람이 분명하다.”라는 게 공공연한 사실로 드러난 터라 그 위협은 두 사람에 대한 실질적인 공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점점 높아집니다.
읽으면서 가장 놀란 점은 챕터 사이사이에 배치된 다양한 종류의 사진들입니다. 살해된 10대 소녀들의 생전 사진, 사건이 벌어진 현장, 수사 중인 경찰, 취재 중인 칼리 등 다양한 사진들이 게재돼있는데, 조금 전까지 활자로 접한 인물과 풍경이 생생한 사진으로 눈앞에 나타나자 ‘부기맨’의 공포는 더 이상 소설 속 허구가 아닌 피부에 와 닿는 실체로 전화됩니다. 동시에 다시 한 번 “과연 어디까지가 실화고 어디까지가 허구인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르포와 소설의 미덕이 절묘하게 믹스된 ‘부기맨을 찾아서’의 진면목은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범죄미스터리로서도 매력적이지만 ‘형식이 어떻게 내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서 무척 색다른 간식 같은 쾌감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독자에 따라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듯한 얼얼함도 즐길 수 있으니 ‘작가의 말’을 절대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족이자 쓴 소리를 한마디만 보태자면, 어쩌다 한 번씩 눈에 거슬렸던 의아한 번역 때문에 아쉬움을 느끼곤 했는데, 오역은 아니지만 매끄럽지 않거나 능동태와 수동태가 뒤바뀐 문장들은 편집과정 상의 옥의 티로 보였습니다. ‘부기맨을 찾아서’가 좋은 성과를 거둬 증쇄를 하게 된다면 꼭 수정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