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변호인
야쿠마루 가쿠 지음, 남소현 옮김 / 북플라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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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형사 스즈카가 남편 몰래 만나던 호스트 카노 레이지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됩니다.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살인사건 변호는 처음인 30살의 모치즈키 린코가 스즈카의 변호인이 됩니다. 같은 법률사무소의 니시가 공동변호인으로 가세했지만 린코는 의뢰인을 함부로 대하곤 하는 니시의 태도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앞뒤가 안 맞는 진술을 거듭하는 스즈카입니다. 결국 린코와 니시는 가해자 스즈카와 피해자 카노의 관계는 물론 그들의 과거에 관해 직접 알아봐야 하는 처지에 이릅니다. 검찰이 계획된 살인을 주장하는 가운데 린코와 니시는 스즈카의 정당방위를 입증하기 위해 분투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악화될 뿐입니다.

 

2009년 한국에 처음 소개된 천사의 나이프를 읽은 이후 야쿠마루 가쿠의 팬이 되어 그동안 꽤 많은 작품들을 읽어왔습니다. ‘형사 변호인은 한국에 소개된 그의 18번째 작품으로,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첫 작품입니다. 작가 스스로도 많은 준비를 거쳐 내놓은 첫 법정미스터리라고 밝혔지만 형사 변호인은 성격도 가치관도 판이한 두 변호사 린코와 니시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행적을 조사하며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클라이맥스와 엔딩은 법정에서 이뤄지긴 하지만, 독자 입장에선 물과 기름 같으면서도 비슷한 상처를 지닌 린코와 니시가 성실하고 집요하게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 그리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변호사로서 성장하는 과정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법조인 가문에서 성장한 린코는 형사 전문 인권변호사였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니시는 진실을 위해서라면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나 진술이라도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라는, 변호사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두 사람 모두 범죄자를 옹호한다는 이유 때문에 세간의 욕을 먹는 형사 변호사지만 지향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는 뜻입니다. 구치소에 갇힌 스즈카를 대하는 태도 역시 180도 다른데, 특히 니시는 변호사라기보다는 취조하는 경찰처럼 스즈카를 몰아붙입니다. 어르고 달래며 진술을 얻어내려는 린코와 달리 니시는 진실을 감추는 듯한 스즈카에게 조금의 동정도 없는 냉정한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팀플레이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는 린코와 니시의 차이점은 미스터리만큼이나 흥미롭게 읽히는 대목입니다.

 

반면 범죄로 인해 가까운 사람을 잃은 적이 있으며 형사 변호사가 되기까지의 지난한 과거를 지녔다는 공통점 때문에 두 사람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상대방의 가치관과 입장을 존중하기도 합니다. 또한 가까운 사람을 해친 범죄자도 변호할 수 있겠는가?”라는 고통스러운 질문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위로하기도 응원하기도 합니다. 이런 매력들 때문에 린코와 니시를 주인공으로 한 법정미스터리 시리즈가 이어지기를 바라게 됐는데, 야쿠마루 가쿠가 후속작을 내줄 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작품이 400페이지 안팎인데 반해 형사 변호인500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작품입니다. 법정미스터리지만 막판 법정 장면은 20%에 불과하고 앞의 80%는 린코와 니시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및 과거를 파헤치는데 할애됩니다. 외양은 변호사지만 실은 형사나 다름없이 수많은 사람들을 탐문하며 정보를 모으는 것이 린코와 니시의 주된 업무입니다. 법정미스터리가 취향이 아닌 독자라도 형사 변호인은 야쿠마루 가쿠 특유의 묵직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사회파 미스터리 서사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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