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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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디션에 합격한 7명의 남녀가 연출가의 지시를 받고 외딴 펜션에 모입니다. 하지만 연출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편지를 통해 “34일 동안 연극의 모든 것을 배우들 스스로 구성해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특이한 건 펜션을 폭설로 고립된 산장으로 여기라는 것,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금지시킨 점입니다. 또한 뜻밖의 일이 벌어지더라도 연극의 일환으로 받아들이라는 애매한 부언까지 남깁니다. 어리둥절한 채 하룻밤을 보낸 일행은 충격적인 아침을 맞이합니다. 배우 한 명이 사라졌고 그 자리엔 살인을 암시하는 쪽지가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논란 끝에 연극의 일부라고 결론 내렸지만 다음 날 또 한 명이 사라지고 명백한 실제 살인의 단서가 발견되자 일행은 현실인지 연극인지 구분할 수 없는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편의상 붙인 이름이겠지만 이 작품은 하쿠바산장 살인사건’(1986, 구판 제목은 백마산장 살인사건’)가면산장 살인사건’(1990)에 이은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의 한 편입니다. 일본에서 1992년에 출간된 작품으로 클로즈드 서클’, 즉 밀실살인을 소재로 다루고 있어서 다분히 고전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습니다.

고립된 산장’, ‘연이어 발견되는 시체’, ‘범인은 일행 중 한 명이라는 전형적인 공식을 따르고 있지만, 이 작품은 펜션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가 실제 벌어진 살인사건인지 연극 연습의 일환이지 알 수 없기 때문에 7명의 배우는 물론 독자마저 혼란에 빠뜨린다는 점에서 나름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사건이 벌어진 직후만 해도 모두들 연극 연습이라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두 번째 사건과 함께 명백한 살인 도구가 발견되면서 큰 혼란에 빠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사건이라는 주장과 연극 연습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펜션에 모인 배우들은 공포에 휩싸입니다. 실제 사건임을 전제로 범행 동기를 캐려는 갑론을박도 벌어지지만 그 어떤 추리도 금세 모순이 드러나고 막다른 벽에 부딪힙니다. 독자 역시 배우들의 혼란을 고스란히 체감하게 되는데 동시에 현실이든 연극이든 그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왠지 김이 샐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을 피할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독특한 해법과 엔딩을 제시합니다. ‘현실이냐 연극이냐라는 이분법적 추리를 뛰어넘는 엔딩은 독자에 따라 다소 억지스럽게 받아들일 여지가 많은 게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론 고전적이면서도 꽤 참신한 해법으로 보였습니다. ‘누가 범인?’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가 의외의 진실 덕분에 기분 좋은 정도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랄까요?

요약하자면, 요즘의 독자 눈높이에 어울리는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가끔 특별한 간식이 생각나듯 아날로그 냄새가 폴폴 풍기는 고전을 읽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질 때 집어 들면 딱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새삼 오래 전에 읽은 하쿠바산장 살인사건과 아직 읽지 못한 가면산장 살인사건을 읽고 싶어졌는데, 연이어 읽기보다는 특별한 간식이 생각날 때를 기다려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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