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통제구역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세윤 옮김 / 오픈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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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탄 노인의 돈봉투를 노리던 한 남자를 제압한 리처는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는 노인의 딱한 사정을 듣게 된다. 노인이 살고 있는 도시는 우크라이나인과 알바니아인 갱단이 구역을 나눠 지배하고 있는데, 이들이 사채업을 비롯해 여러 불법적인 사업을 운영하면서 시민들의 돈을 갈취하고 있었다. 리처는 노인을 대신해 사채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의도치 않게 두 갱단에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에 휘말리면서 조직 간에 난투극이 벌어지게 만든다. 이 틈을 타 갱단들을 박살내려던 리처는 갱단을 움직이는 더 큰 세력이 존재함을 알게 되고 코어 집단을 파괴하기 위해 출입통제구역으로 향한다. (출판사 소개글을 일부 수정 후 인용했습니다.)

 

출입통제구역잭 리처 시리즈24번째 작품입니다. 이 시리즈는 제게는 무척 애매한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중고로 구매한 7편을 소장하고 있지만 아직 읽은 적이 없고, 유일하게 읽은 건 우연히(?) 도서관에서 대출했던 나이트 스쿨한 편 뿐입니다. 구매한 작품들을 읽지 않은 건 언젠가 순서대로 시리즈를 읽고 싶은 욕심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 벌어진 사태이고, ‘나이트 스쿨은 어쩌다 보니 대출한 책에 끼어 있어서 우발적으로 읽게 됐을 뿐입니다. 핑계에 불과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잭 리처 시리즈초기작이 뭉텅이로 한국에 출간되지 않은 것도 읽고 싶은 마음이 덜 들게 만든 이유 중 하나입니다. (현재 한국에는 3~8, 12편 등 모두 일곱 작품이 출간되지 않았습니다.) 원톱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시리즈인데 그의 성장과정중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읽을 수 없다 보니 좀 맥이 빠진다고 할까요?

 

아무튼... 그런 이유 때문에 뜬금없이 읽게 된 출입통제구역은 이야기는 술술 읽히지만 잭 리처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기는 여러 가지로 무리인 작품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퇴역 후 미국 전역을 떠도는 잭 리처는 칫솔 하나만 달랑 들고 마음 내키는 곳에 머물며 법의 영역을 벗어난 범죄자들을 모조리 처단한다.”는 시놉시스에서 알 수 있듯 고정 조연들이 없다 보니 더더욱 잭 리처의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맛볼 수 없었습니다. 역시 빠진 작품들이 많더라도 시리즈 첫 편인 추적자부터 차근차근 읽어봐야 할 것 같긴 합니다.

 

줄거리대로 잭 리처는 위기에 처한 노인을 돕는 아주 작은 선행 하나 때문에 거대한 갱단의 살육전에 말려드는 것은 물론 그보다 더 큰 세력과의 목숨을 건 싸움을 시작하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육군 헌병대 출신인 잭 리처를 돕는 건 해병대 출신의 드럼연주자와 냉전시대를 겪은 기갑부대 출신의 노인입니다. 갱단에게 끔찍한 일을 당했던 웨이트리스와 재즈 밴드의 리더 역시 잭 리처의 지원군으로 활약합니다.

잭 리처가 갱단의 살육전을 촉발시키는 초반부는 마치 블랙코미디처럼 전개됩니다. 잭 리처의 소행을 상대 갱단의 도발로 여긴 오해들이 차곡차곡 쌓이다가 무자비한 보복전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갱단들이 잭 리처의 존재를 깨달으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고 잭 리처는 사악하기 짝이 없는 갱단들과의 전쟁을 냉정하면서도 한 치의 자비심도 없이 벌여나갑니다. 그 와중에 자신에게 선의를 베푼 웨이트리스와 짧지만 강렬한 로맨스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하드보일드 캐릭터지만 나름 할 일은 다 하는 매력적인 잭 리처가 아닐 수 없습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유일하게 읽은 나이트 스쿨과 달리 별 5개를 주지 못한 건 몇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우선 잭 리처에게 도무지 인간미를 찾아볼 수 없었는데 어쩌면 이건 이 시리즈의 가장 고유한 특징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읽는 내내 좀 혼란스러웠던 점입니다. 위기의 노인을 구하고 그를 돕는 과정이나 웨이트리스와 로맨스를 벌이는 대목에서도 잭 리처에게서 온기라곤 거의 느낄 수 없었습니다. 마치 비즈니스의 일환처럼 보였다고 할까요? ‘나이트 스쿨의 서평을 다시 찾아보니 딱히 그런 느낌은 없었던 것 같은데 어쩌면 작품에 따라 인간미를 맛볼 수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또 한 가지 아쉬웠던 건 클라이맥스와 엔딩을 장식한 거대 세력과의 일전입니다. 갱단들 역시 만만치 않은 존재들이었는데 그보다 더 거대한 세력을 등장시켜 잭 리처를 폭주하게 만든 건 왠지 사족처럼 느껴졌습니다. 더구나 우연히 얻은 지원군들이 없었다면 100% 불가능한 작전이었기에 현실감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갱단들과의 전쟁으로 이야기가 끝났다면 훨씬 더 깔끔한 마무리가 됐을 거란 생각입니다.

 

작품 자체보다 엉뚱한 소리가 더 많았던 서평이 되고 말았는데, 쓰다 보니 조만간 잭 리처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지고 말았습니다. 분명 매력 넘치는 캐릭터인데 그의 초기 모습부터 제대로 맛보지 않으면 잭 리처는 물론 이 시리즈 자체를 만끽하는 게 불가능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뭉텅이로 빠진 초창기 작품들이 뒤늦게 한국에 출간될 것 같진 않지만 아쉬운대로 첫 편부터 차근차근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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