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의 밤 안 된다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청미래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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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의 밤은 전작인 절벽의 밤에 이은 이른바 안 된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시리즈 명이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두 편 모두 수록된 단편들의 제목이 하나같이 ‘~해서는 안 된다로 끝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이 시리즈의 명칭은 いけないシリーズ입니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단편의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을 통해 독자 스스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터무니없이 어렵진 않아서 저처럼 둔한 독자라도 대부분 진상을 알아챌 수는 있는데, 두 작품 모두 딱 한 장의 사진은 결국 마지막에 실린 옮긴이의 말의 힘을 빌려야만 했습니다. 혹시 미션에 실패하더라도 이어지는 수록작에 그 진상이 설명되는 경우도 있으니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없습니다.

 

전작인 절벽의 밤이 자살 명소로 유명한 유미나게 절벽을 배경으로 삼았다면 폭포의 밤은 모란꽃으로 유명한 미고오리 시 주변의 명승지들이 사건의 주 무대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그 명승지들의 이름은 불길한 뜻이나 유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가쿠레이 산에는 죽는다’, 고코 강에는 죽은 뒤 신에게 바쳐지는 공물’, 묘진 폭포에는 저승’, 무쿠로 다리에는 송장이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기이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지지만 미스터리는 쉽사리 풀리지 않습니다. 또 주요 인물 대부분이 각 단편에 번갈아 등장한다는 점, 즉 사건은 달라도 이런저런 식으로 얽혀있다는 설정 때문에 미스터리는 더욱 복잡하고 흥미롭게 전개되기도 합니다.

 

수사를 맡은 주인공은 이제 형사과에 배치된 지 1년밖에 안 돼서 처음으로 살인사건과 마주하게 된 신참 구마지마입니다. (실은 구마지마의 형도 형사였는데, 그는 전작인 절벽의 밤에 등장한 바 있습니다.) 피의자 심문조차 처음 겪는 구마지마는 어설픈 초짜의 티를 벗지 못하지만 엄격한 베테랑 형사 도코로의 질책 속에 조금씩 형사로서의 촉을 발휘해나갑니다.

 

묘진 폭포에서 소원을 빌어서는 안 된다

1년 전 묘진 폭포 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언니 히리카의 비밀 SNS 계정을 뒤늦게 발견한 모모카는 언니의 행적을 따라 산에 들어갔다가 산장지기 오쓰키의 도움을 받지만 그의 산장에서 절대 봐서는 안 될 것을 보고 맙니다.

 

머리 없는 남자를 구해서는 안 된다

담력시험을 통해 친구를 놀려주려던 초등학생 신은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는 삼촌의 도움을 받아 목 없는 인형을 빌려 숲속에 설치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가 벌어진 탓에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그 영상을 조사해서는 안 된다

한 노인이 폭력을 휘두르던 아들을 살해하고 시신을 강에 유기했다고 자수합니다. 하지만 시신은 발견되지 않고 노인의 진술은 어딘가 진실을 숨기는 듯한 뉘앙스를 풍깁니다. 가까스로 진상을 담은 영상을 발견하지만 오히려 형사 구마지마의 수사를 혼돈에 빠지게 만듭니다.

 

소원 비는 목소리를 연결해서는 안 된다

숲에서 오래 전 매장된 사체가 발견됩니다. 그리고 이 사체는 앞서 벌어진 세 개의 사건을 한 곳으로 소환합니다. 우연과 필연이 복잡하게 얽힌 가운데 형사 구마지마는 가까스로 모든 진실에 다가가게 됩니다.

 

명확한 사건이 있고 집요한 수사가 이뤄지지만 폭포의 밤은 전작인 절벽의 밤과는 달리 호러의 느낌이 강한 작품입니다. 불길한 이름과 유래를 내포한 자연경관 속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사건들, 어둡고 음울하기 짝이 없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심리, 모든 게 우연 같아 보이지만 실은 어차피 벌어질 수밖에 없어 보이기도 하는 지독한 운명 등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분위기는 호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또 초반에는 다소 가벼운 서사처럼 읽힐 수도 있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야기의 무게와 어둠의 농도가 진해지는 걸 확연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선지 사진 속에 담긴 사건의 진상을 직접 알아냈을 때의 쾌감은 여느 미스터리에서는 맛볼 수 없는 색다른 간식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론 미치오 슈스케가 안 된다 시리즈를 좀더 내줬으면 하는 바람인데, 혹시 나온다고 해도 구상하는 것 자체가 고역일 것 같은 이 시리즈가 몇 년 후에나 신작 소식을 들려줄 지는 쉽게 예상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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