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 아닌 잘못
아사쿠라 아키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택건설 대기업의 영업부장인 야마가타 다이스케의 삶이 하루아침에 붕괴되고 맙니다. 한 트위터 계정에 살인자와 피살자가 함께 찍힌 살해 현장 사진이 올라와 파문을 일으켰는데, 10년 전에 만들어진 그 계정의 주인이 바로 다이스케 자신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이스케는 인터넷조차 서투른데다 트위터 계정 같은 건 만든 적도 없습니다. 그날 이후로 마녀사냥의 타깃이 된 다이스케는 경찰과 극렬 유튜버의 추적을 피해 기약 없는 도주길에 오릅니다. 하지만 또 다른 시신이 그의 집 창고에서 발견되면서 다이스케는 그 어떤 변명과 해명도 통하지 않을 거란 사실에 좌절합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건 직접 진범을 찾는 것. 하지만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만든 진범을 찾는 과정에서 다이스케는 더 큰 충격에 빠지고 맙니다.

 

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 ‘여섯 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난 아사쿠라 아키나리의 작품입니다. 앞선 두 작품이 각각 초능력과 신입사원 공채를 소재로 삼은 이야기들이라 읽을지 말지 무척 고민했던 게 사실인데, 예상외로 흥미롭게 읽었던 터라 이번에는 조금도 주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이 작품의 세부 장르는 인터넷 마녀사냥 미스터리 도주극입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이 작품은 사회 문제와 본격 미스터리의 완벽한 만남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설명 모두 이 작품의 반전의 미덕을 내포하진 못하고 있는데, 그건 아마도 그 반전을 상징하는 단 하나의 단어만 사용해도 초대형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도망자 다이스케를 향한 인터넷 마녀사냥이 횡행하는 미스터리도 맞고, 사회 문제를 다룬 미스터리도 맞지만, ‘내 것이 아닌 잘못은 딱히 어떤 장르라고 못 박기 어려운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작품입니다. 살인, 도주, 마녀사냥, 인터넷범죄, 학대, 복수, 참회 등 여러 가지 소재가 복잡하게 버무려진 이야기라고 할까요?

 

이야기는 도망자 다이스케, 그의 딸 나쓰미, 관할서 형사 호리, 그리고 진범이 올린 트윗을 리트윗하여 폭발적으로 퍼지게 만든 대학생 쇼마 등 여러 사람의 시점으로 나뉘어 전개됩니다. 하루아침에 전 국민에게 지탄받는 연쇄살인마가 된 다이스케가 힘겨운 도주를 거듭하며 겪는 여러 에피소드들 외에도 그의 범죄를 부인하면서도 어딘가 어두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가족들, 다이스케의 진범 여부를 놓고 갈등을 벌이는 관할서 형사와 현경 형사, 갑자기 나타난 여대생 때문에 엉겁결에 다이스케 추격전에 나서게 된 대학생 등 여러 인물들의 다이스케를 향한 복잡한 시선과 감정들이 빠른 속도로 펼쳐집니다. 그리고 매 챕터 후반부에 인터넷과 트위터에서 벌어지는 막무가내식 마녀사냥이 적나라하게 소개됩니다.

 

다이스케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아는 건 독자뿐입니다. 당연히 그의 누명 벗기를 간절히 바라게 될 거라 생각했지만, 이야기는 예상외의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하고, 어느 시점인가부터는 진범의 의도는 무엇인가?’, 다이스케가 이런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에 더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막판의 한차례 반전을 통해 소개되면서 독자의 뒤통수를 때립니다. 저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독자는 그 지점에서 책의 앞부분을 허겁지겁 뒤져볼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작가가 얼마나 교묘하게 복선을 깔아놓았는지를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도주극은 빠른 템포에 긴장감과 사실감을 놓치지 않았고,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심리도 세밀하게 잘 묘사됐으며, 반전도 나름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딱히 어디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고는 할 수 없는 작품입니다. 중요 인물의 부자연스러운 등장, 감동을 강요하는 듯한 반성과 참회, 누가 봐도 수상한 단서를 애써 무시하는 인물,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주제와 교훈에 대한 강의에 가까운 설파 등 위화감이나 불편함을 일으킨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큰 것 하나만 꼽자면 진범의 동기입니다. 마지막에 밝혀진 진범의 동기는 그럴 만 했다라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을 정도로 다소 억지스러웠습니다. 연쇄살인도, 다이스케를 함정에 빠뜨린 일도 필연적이거나 운명적이란 느낌을 받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반전 자체는 놀라웠지만 설득력 없는 진범의 동기 때문에 그 맛이 반감된 게 사실입니다.

 

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고, ‘여섯 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은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면 내 것이 아닌 잘못은 딱 두 작품의 중간쯤이었다는 생각입니다. 한국에 출간된 아사쿠라 아키나리의 작품 중 누아르 레버넌트‘9번째 18살을 맞이하는 너와는 왠지 취향과 거리가 먼 것 같아 읽지 않았지만, 그의 정통 미스터리가 출간된다면 일단은 찾아 읽으려고 합니다. 아직은 호불호를 확실히 결정하지 못한 상태라 적어도 한 작품 정도는 더 읽어봐야 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