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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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이치를 포함한 대학시절 등산동아리 멤버 6명과 슈이치의 사촌형 쇼타로 등 7명은 나가사키의 산속에 위치한 기이한 지하 건축물 - 거대한 화물선을 닮은 지하 3층 규모의 방주’ - 을 발견하곤 크게 놀랍니다.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지은데다 수십 년 넘게 사용한 흔적이 없어 으스스한 기분을 자아내지만 멤버들은 폐허 탐험의 기회라며 하룻밤을 묵기로 합니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 지진과 함께 방주의 출입구는 거대한 바위로 막혀버립니다. 거기다가 지하수의 흐름마저 바뀌어 며칠 후면 전원이 수몰될 위기에 처합니다. 문제는 바로 그 시점에 의문의 살인사건이 벌어졌다는 점입니다. 과연 누가, , 하필 이 시점에 살인을 저지른 건지 아연한 가운데 연이어 살인이 벌어지자 멤버들은 패닉에 빠지고 맙니다.

 

일본의 각종 미스터리 차트를 석권한 것은 물론 본격 미스터리가 살아남기 위한 단 한 가지 멋진 방법이 여기 있다.”(노리즈키 린타로), “얼얼한 맛의 에필로그에 백퍼센트 경악 보증.”(아키요시 리카코) 등 거장들의 찬사를 받은 방주는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의 전형적인 공식을 따르면서도 지금껏 본 적 없는 특이한 설정과 예측 불허의 반전이 빛나는 작품입니다.

 

외부와 차단된 지하건축물 방주에서 살아나갈 길은 오직 하나, 지하 2층에 있는 닻감개를 통해 출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바위를 밑으로 떨어뜨리는 것인데, 문제는 그 닻감개를 조작하는 사람은 밖으로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는 점입니다. 지하수의 상승으로 전원 수몰되기까지는 단 1주일밖에 안 남은 상태이고, 결국 누군가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잃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필 이런 때 벌어진 살인사건으로 인해 멤버들의 혼란은 극에 달합니다. 전날 밤늦게 산에서 길을 잃고 방주에 합류한 일가족 3명까지 모두 10명으로 시작된 폐허 탐험은 첫 피살자가 나온 순간부터 이른바 데스 게임, 즉 누군가 한 사람이 죽어야만 종료되는 참혹한 상황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밀실에서 살인이 벌어지고 무리 중에 범인이 있다.”라는 고전적인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의 외양을 갖고 있지만 방주는 거기에다 데스 게임의 원칙을 부여하여 이야기를 한층 복잡하고 긴장감 넘치게 만듭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 (닻감개로 바위를 치우고 홀로 갇히는 식으로) 희생돼야만 모두가 생존할 수 있는 상황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자 멤버들은 살인범에게 그 희생을 맡겨야 한다고 의견을 모읍니다. 하지만 살인범을 밝혀낸다고 해도 그가 희생을 받아들일 거란 보장은 없습니다. 오히려 서로 살겠다고 피비린내 나는 폭력이 난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그가 아무리 살인범이라 해도 그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건 살인행위와 다를 바 없기 때문에 멤버들 모두 심한 내적 갈등을 겪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상태에서 연이어 잔혹한 살인사건이 벌어지지만 누구도 단서 하나 찾아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 방주를 수몰시킬 지하수의 수위는 계속 높아질 뿐입니다.

 

과연 살인범이 기꺼이 희생양이 돼줄까?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굳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동기는 무엇일까? 왜 하필 지진 직후 살인이 시작된 것일까? 왜 살인범은 수고스럽게도(?)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얼핏 쉬워 보이는 밀실살인사건으로 시작됐지만 풀리는 수수께끼라곤 거의 없고 연이어 희생자가 등장하는데다 범인을 밝히는 것만으로 이 이야기가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 때문에 독자는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누가?’도 궁금하지만 ?’를 전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에 작가가 마지막에 어떤 엔딩을 내놓을지 예측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또한 막판에 의외의 인물이 범인으로 밝혀지지만 사실 진짜 클라이맥스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다 읽고 나면 얼얼한 맛의 에필로그에 백퍼센트 경악 보증.”이라는 아키요시 리카코의 극찬에 100% 동감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사실 중반부에 동어반복과 함께 살짝 느슨해지는 대목이 있긴 하지만(이 때문에 별 0.5개를 뺐습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거듭 반복되는 반전을 제대로 맛보려면 그 지점들을 꼼꼼하게 읽어야만 합니다.

 

유키 하루오는 1993년생의 젊은 작가입니다. 거장들의 극찬을 받은 방주가 본인에겐 더없는 영광이자 자랑이겠지만 동시에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허들인 것도 사실입니다. 유키 하루오가 머잖아 방주를 뛰어넘는 본격 미스터리를 선보여줄 것을 조심스레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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