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에 별을 뿌리다
구보 미스미 지음, 이소담 옮김 / 시공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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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물, 특히 미스터리와 스릴러 편식이 과하게 심한 독자지만, 가끔씩 사람 사는 이야기에 대한 갈증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물론 따뜻하고 뭉클하고 건전한(?) 이야기보다는 다소 무겁고 어둡고 파괴적인 이야기에 더 끌리는 게 사실이긴 합니다. 그럴 때마다 신작 소식을 기다리게 되는 일본 작가 두 명이 있는데 사쿠라기 시노와 구보 미스미가 그들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불온한 기운도 느껴지는가 하면, 어딘가 서정적이거나 애틋한 감상에 젖게 만들기도 하고, , 짙은 해무 속에 무엇이든 감출 수 있을 것 같은 관능적인 분위기도 감지되는 훗카이도의 소도시 구시로를 배경으로 다양한 군상들의 이야기를 펼치는 게 사쿠라기 시노의 작풍이라면, “인간의 가장 순수한 본능인 성()을 매개로 상처와 상실에 잠식된 사람들의 삶을 그리는 것이 구보 미스미의 특징입니다.

 

구보 미스미는 파격적인 성애묘사 때문에 19금 판정을 받은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2011)로 한국 독자와 처음 만난 이후 밤하늘에 별을 뿌리다까지 모두 다섯 편을 선보였습니다. 앞선 작품들의 경우 조금씩 수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성()이 중요한 코드로 작용하고 캐릭터 대부분은 상처투성이이며, 연작단편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밤하늘에 별을 뿌리다(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밤하늘에 뜬 별을 장치로 삼아 등장인물의 복잡한 마음, 현실과 바람을 보여주는 단편집”, “힘들어도 슬퍼도 괴로워도 상실감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과 연작단편이라는, 구보 미스미의 가장 큰 매력이 빠진 탓에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그녀답지 않게(?) ‘희망의 기운을 담은 수록작들은 색다른 맛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다섯 편의 수록작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상처와 상실에 잠식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 소중히 여기는 밤하늘의 별을 품고 있습니다. 쌍둥이 여동생을 뇌출혈로 잃고, 애인으로 여겼던 남자마저 잃어버린 32살의 아야에게는 쌍둥이 별자리가(한밤중의 아보카도), 여름방학 중 바닷가에서 잠시 만난 터무니없는 첫사랑을 허망하게 잃은 16살 마코토에게는 남쪽하늘의 안타레스가(은종이색 안타레스),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고 집단 괴롭힘에 시달리는 중학생 미치루에게는 처녀자리의 별 스피카가(진주별 스피카), 아내와 딸을 이혼으로 잃은 뒤 가까이 지내던 이웃의 모녀마저 잃은 37살 영업사원 사와타리에게는 밤하늘의 달이(습기의 바다), 그릐고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를 잃은데다 자신을 보살펴준 이웃의 할머니까지 잃은 초등학교 4학년 소우에게는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흐드러진 별들이(별의 뜻대로) 따뜻한 위안이자 의지처로 마음 한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별들을 지켜보며 힘들어도 슬퍼도 괴로워도 상실감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밤하늘에 별을 뿌리다입니다.

 

이 작품은 2022년 상반기 나오키 상을 수상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 작품이 나오키 상을 수상할 만했나?”라는 의문을 가질 정도로 딱히 개성이나 특징이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주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일본 소설에 가까운 게 사실입니다. 다만 저의 경우, 구보 미스미의 광팬이다 보니 사심이 잔뜩 들어갈 수밖에 없어서 문장 하나하나를 애틋한 심정으로 읽게 됐는데, 혹시라도 이 작품으로 구보 미스미를 처음 만난 독자라면, 그래서 그녀의 진면목을 맛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면 지금은 절판된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를 중고로라도 찾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나머지 작품들도 모두 매력적이지만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는 압권 중의 압권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독한 성애 묘사가 거북한 독자라면 다른 작품들을 먼저 만나보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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