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막이 내릴 때 (저자 사인 인쇄본)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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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한 아파트에서 중년여성 오시타니 미치코의 사체가 발견됩니다. 사망 직전 고향 친구인 유명 연극연출가 아사이 히로미를 만난 것이 확인됐지만 그 외에는 단서도 동기도 알아낼 수 없어 수사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힙니다. 경시청 수사1과의 마쓰미야는 인근에서 일어난 노숙자 사망사건과의 연관성을 밝혀내지만 두 사망자 사이의 연결고리는 오리무중일 따름입니다. 사촌형이자 니혼바시 경찰서 형사인 가가에게 자문을 구하던 마쓰미야는 범행현장에서 발견된 기이한 달력 - 니혼바시 일대 12개의 이름이 적혀 있는 - 이야기를 꺼냈다가 가가의 표정이 굳는 걸 보곤 놀랍니다. 20여 년 전 집을 나간 뒤 고독사한 어머니 유리코의 유품 속에 똑같은 메모가 있던 걸 기억해낸 가가는 경시청 상부의 허락을 받고 수사에 참여하게 됩니다.

 

기도의 막이 내릴 때라는 제목에서 감지할 수 있듯 이 작품은 가가 형사 시리즈10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입니다. 또한 시리즈 중간중간 언급됐던 가가의 비극적인 가족사가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 있어서 그를 지켜봐온 팬이라면 어떤 엔딩이 기다리고 있을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어머니 유리코는 가가가 12살 때 집을 나간 뒤 소식을 끊었습니다. 경시청 수사1과에 근무하던 20대 후반 무렵, 그러니까 어머니가 집을 나간 지 16년 만에 낯선 사람으로부터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홀로 유골을 수습했던 가가는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어머니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들인 자신을 조금이라도 기억은 하고 있었는지 알고 싶을 따름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두 살인사건의 범인 혹은 피해자가 어머니와 어떤 식으로든 인연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자 가가는 경시청의 수사를 돕는 형태로 어머니의 흔적을 쫓기 시작합니다. 평소보다 더 집요하고 꼼꼼하게, 하지만 평소와 달리 폭주하기도, 흥분하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수사의 1차 목표는 아무런 연관성도 찾아볼 수 없는 두 살인사건 피해자의 접점을 파악하는 것,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인 유명 연극연출가 아사이 히로미와 피해자들 사이의 접점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무려 30년 전의 일까지 조사해야 하는 탓에 마쓰미야를 비롯한 경시청 수사팀의 탐문은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다름없습니다. 탐문 상대 대부분이 희미한 기억 외엔 결정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지만 가가는 그들의 진술 속에서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위화감을 포착하고 전혀 다른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앞선 시리즈들에서 늘 그랬듯 가가는 사소한 단서와 평범한 진술 속에서 진실과 진상을 알아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피살된 자의 달력과 어머니의 유품 속 메모에 같은 필체로 적혀있던 니혼바시 12개 다리 이름의 미스터리를 파악함으로써 단번에 수사에 큰 전환점을 마련합니다.

 

불과 2년 반 만에 다시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감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형사로서의 가가의 능력이 최대치로 발산되는 가운데 사건의 중심에 그의 비극적인 가족사가 놓여있다 보니 그 어떤 작품보다 몰입감도 높고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도 빠를 수밖에 없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중 한 작품을 연상시키는 살인사건의 진상 역시 비극의 강도가 대단해서 개인적으론 그의 미스터리 가운데 베스트로 꼽아도 손색없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런 느낌은 시리즈를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야만 제대로 맛볼 수 있지만 말입니다.

 

시리즈 마지막 작품이라 더 깊은 인상과 여운이 남았겠지만 동시에 그만큼의 아쉬움 - 더는 가가 형사의 활약을 지켜볼 수 없다는 사실 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시리즈 전체를 순서대로 다시 읽으면서 일곱 번째 작품인 붉은 손가락에서 이제야말로 가가의 전성시대가 시작됐구나!”라고 감탄했고, 실제로 그 뒤로 나온 세 작품은 하나 같이 가가의 매력이 만발했던 작품들이라 아쉬움은 더욱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도 있지만, 가가의 퇴장은 너무 빨랐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이 일본에서 출간된 게 9년 전이니, 시리즈가 계속 이어졌다면 지금쯤 가가는 40대 중반이 돼있을 것입니다. 성격상 관리직이 되진 않았을 테니 여전히 현장을 뛰고 있는 가가를 그린 열한 번째 작품이 지금 나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아니면 외전으로라도 좋으니 언젠가 꼭 한 번은 가가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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