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미스터리 키친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진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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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혹은 요리사가 등장하는 미스터리 가운데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작품은 기타모리 고의 가나리야 시리즈입니다. 단번에 시선을 잡아 끈 제목에 홀려 읽은 시리즈 첫 편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을 포함 모두 세 작품이 출간됐는데, 출판사 소개글을 그대로 인용하면 뒷골목 맥주바 가나리야의 마스터 구도 데쓰야가 단골손님들의 삶의 비애와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여섯 가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딱히 음식이나 요리사가 등장하는 미스터리에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잔혹한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취향 때문에 부드럽고 달달할 게 99% 확실한 소프트 미스터리를 멀리 했던 탓으로 보입니다.

 

그런 제가 한밤의 미스터리 키친을 읽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전적으로 이시모치 아사미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 직전에 출간된 절벽 위에서 춤추다는 별 3개라는 야박한 평점을 줬지만 그 전에 읽은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는 각각 4.5, 5개의 높은 평점을 준 바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제겐 믿고 읽을 수 있는 작가라는 뜻입니다.

 

출판사가 명명한 이 작품의 장르는 미식 미스터리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범죄도 등장하지 않는 순수한 일상 속 사연들을 다루고 있으니 더 엄밀히 얘기하면 미식 일상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자인 나쓰미와 그녀의 남편 겐타, 대학교수이자 안락탐정인 나가에와 그의 아내 나기사, 그리고 그들의 자녀인 초등학생 다이와 사키 등 모두 여섯 명이 등장합니다. 두 부부는 번갈아 자기 집에서 술과 음식을 곁들인 만남을 이어갑니다. 나쓰미-나가에-나기사는 대학시절부터 절친이자 술친구였고 후일 나쓰미가 겐타와 결혼한 뒤에도 이 특이한 술자리는 지속됐습니다. 그러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10여년의 공백이 있었고 이제 예비중년이 된 그들은 다시금 좋은 술과 맛난 음식이 곁들여진 소소한 즐거움을 되찾게 됐습니다.

 

일곱 편의 수록작 모두 같은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와인, 소주, 사케 등 다양한 주종과 함께 로스트비프, 연어 술지게미 절임, 오징어내장구이 등 맛깔난 안주들로 채워진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도중 화자인 나쓰미가 문득 과거의 어떤 일을 떠올립니다. 그 일들이란 가십거리에 불과한 사소한 것들이지만 모두들 그 뒷이야기 혹은 숨겨진 사연들을 제멋대로 추리하기 시작합니다. 쌍둥이 자매가 서로 다른 날 학원을 다닌 이유, 싱글맘인 후배 여직원이 뒤늦게 이상한결혼을 한 이유, 자녀를 1류 사립학교에 보내려고 애쓰던 부모들이 맞이한 의외의 결과, 완벽한 스펙을 갖춘 남자가 이혼당한 이유, 감상문 숙제를 하기 싫어한 초등 3학년생의 기발한 노림수 등 일상에서 목격할 수 있는 흔한 사연들이 그 추리의 대상입니다.

 

미스터리의 소재를 제공하는 나쓰미와 그녀의 남편 겐타, 그리고 절친인 나기사는 속된 말로 아무거나 막 던지는역할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난상토론이 벽에 부딪힐 때쯤 대학시절부터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뛰어난 두뇌를 샀다.”라는 말을 들어온 대학교수이자 안락탐정 나가에가 아무도 생각 못한 기발한 발상을 통해 진실을 추리해냅니다. 물론 사연의 당사자들이 그 자리에 없으니 정답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모두가 수긍할 법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나가에의 추리는 왠지 심심하고 밋밋할 것만 같던 미식 일상 미스터리를 기대 이상으로 흥미진진하게 만들어놓습니다. 주목할 일 없는 작은 단서에서 진실을 찾아낸다든지 의외의 역발상으로 사연 속 인물들의 행동을 설명하는 나가에는 그 어떤 범죄 미스터리 속 명탐정보다 뛰어난 매력을 발산합니다. 거기에 읽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술과 안주가 곁들여져 있으니 본격 식욕자극 미스터리라는 출판사의 홍보카피에 고개가 끄덕여질 만도 합니다.

 

저 역시 이번에 알게 됐지만 이 작품에는 전작이 있습니다. 2016년에 국내에 소개된 나가에의 심야상담소가 그것인데, 화자인 나쓰미와 안락탐정 나가에, 그리고 그와 결혼한 나기사가 대학생이던 시절 자신들의 술자리에 초대된 손님들의 사연에 감춰진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한밤의 미스터리 키친을 먼저 읽은 제겐 프리퀄이 돼버린 작품인데, 그들의 젊은 날의 치기와 열정 역시 언젠가는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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