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참자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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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3편인 악의부터 7붉은 손가락까지 네리마 경찰서 소속이던 가가는 이 작품부터 니혼바시 경찰서로 소속을 옮깁니다. (시리즈 1졸업에선 대학생으로, 2잠자는 숲에서는 경시청 수사1과 소속으로 등장합니다.) 낯선 곳에 부임한 터라 스스로 신참이라 자칭하며 사건 수사와 함께 니혼바시의 곳곳을 익히고 배우는 모습이 함께 전개됩니다.

 

이 동네에 대해 공부하는 중입니다. 이른바 신참이죠.” (p354)

 

첫 출간 당시 읽었을 때 느꼈던 당혹감이 지금도 기억나는데, 45세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을 추적하는 미스터리지만 이야기의 대부분은 사건과는 무관한 휴먼 일상미스터리처럼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모두 아홉 편의 연작단편이 실려 있는데, 범인을 체포하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마지막 편 외에 모든 수록작이 탐문 대상자인 니혼바시 사람들이 품고 있던 내밀한 사연이나 비밀을 가가 형사가 풀어주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 살인사건과는 무관한, 탐문 대상자들만의 개인적인 문제들을 본의 아니게 가가가 해결해주는 구조라고 할까요? 암에 걸린 어머니 때문에 고민하는 아들, 호스티스에게 돈을 갖다 바치는 남편 때문에 열받은 요릿집 여주인, 감당할 수 없는 고부 갈등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남자, 남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간 딸 때문에 격분한 아버지 등 사건 자체와는 무관하지만 목격자 또는 용의자인 탐문 대상자들의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는 가가의 모습은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합니다.

 

가가 씨는 사건 수사를 하는 게 아니었나요?”

사건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 피해자입니다. 그런 피해자들을 치유할 방법을 찾는 것도 형사의 역할입니다.” (p278)

 

그렇다고 해서 가가가 살인사건 수사에 소홀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수사에 집중한 덕분에 탐문 대상자들이 감추거나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을 자연스레 알게 되고 그 해법과 조언을 진심을 담아 건네곤 합니다. 안 그래도 사소한 단서와 평범한 진술 속에서 진실과 진상을 알아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가가가 동네에 대해 공부하는 신참의 자세를 성실하게 견지했기에 누구도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내밀한 사연들을 눈치 챌 수 있게 된 셈입니다. 부임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가가가 센베이 가게 젊은 딸에게 가가 형사님! 또 땡땡이치는 거에요?”라는 정감어린 꾸중을 듣는 대목은 이 작품의 재미가 함축된 장면입니다.

 

에도 문화가 상당히 많이 남아있는 동네 니혼바시라는 무대는 스토리 못잖게 눈길을 끄는 정감어린 곳입니다. 개인적으로 일본 여행지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규슈의 히타(日田)인데, 시대물 배경으로도 손색없는 그곳의 조용한 정취가 무척 인상적이기 때문입니다. 니혼바시 역시 곳곳에 노포가 자리 잡은 올디스 벗 구디스의 향기가 진한 곳으로 묘사돼있습니다. 그곳의 속살을 기웃거리며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가가의 모습은 미스터리와는 또 다른 볼거리임에 틀림없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사연을 풀어주며 조금씩 진상에 다가가던 가가는 마지막까지 그다운 카리스마와 따뜻한 온기를 전해줍니다. 가가의 예리한 추리와 탐문 덕분에 범인은 체포되고 상부는 사건을 마무리하려 하지만 바로 그 시점에 가가는 범행 이면의 진짜 사연을 밝혀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작가는 가가가 냉정한 형사지만 동시에 얼마나 상대를 배려하는 속 깊은 인물인지를 잘 그려냅니다. 그의 새 상사인 니혼바시 경찰서장은 이번에 좀 재미난 형사를 데려왔다. 머리는 좋은데 삐딱하고 고집이 세다.”라고 표현하지만 이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형사들이 가가를 절반만 닮는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작품 말미에 처음으로 가가가 왜 경시청에서 네리마 경찰서로 좌천됐는지 잠깐 설명이 됩니다. 살인사건 재판에서 변호 측 증인, 즉 범인을 비호하는 증언을 한 탓에 유족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좌천됐다는 점만 설명될 뿐 구체적으로 어느 사건인지까지는 묘사되지 않지만 이 시리즈를 읽어온 독자라면 가가가 유일하게 경시청 형사로 등장했던 두 번째 작품 잠자는 숲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물론 추정일 뿐이지만 말입니다.

 

이제 가가 형사 시리즈 다시 읽기도 단 두 편만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 남은 두 편 모두 정통 미스터리와 함께 가슴 아픈 사연들이 전개되는데, 그래서인지 더는 가가 형사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아껴 읽고 싶지만 니혼바시의 신참가가가 또 어떤 성장을 보였을지 궁금해서라도 조만간 두 편 모두 폭주하듯 달리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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