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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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토대학 미식축구부 출신인 니시와키 데쓰로는 13년 만에 팀 매니저였던 히우라 미쓰키와 만납니다. 그리고 그녀로부터 두 가지 놀라운 고백을 듣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몸은 여자지만 어려서부터 남자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점, 또 하나는 자신이 일하던 바의 호스티스를 스토킹해온 남자를 살해하고 도망치는 중이란 점입니다. 데쓰로와 그의 아내이자 역시 미식축구부 매니저였던 리사코는 신의 실수를 바로잡아 남자가 되려는미쓰키를 자신들의 집에 감춰주기로 합니다. 경찰에 체포된다면 미쓰키의 바람은 영원히 이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식축구부 동료였던 사회부 기자 하야타가 스토커 살해사건을 취재하며 데쓰로를 궁지에 몰아넣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미쓰키마저 행방을 감추자 데쓰로는 당혹감에 어쩔 줄 모릅니다.

 

2003짝사랑’, 2006아내를 사랑한 여자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출간됐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2001년 작품입니다. 줄거리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작품은 달달한 멜로처럼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무척이나 민감하고 논쟁의 여지가 많은 젠더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매체와 장르를 불문하고 지금도 여전히 다루기 조심스러운 소재라서 그런지 출간된 지 20년도 넘은 작품이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미쓰키를 통해 젠더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거기에 스토커 살해사건이라는 미스터리를 접목시켜 이야기의 볼륨감을 더욱 두텁게 만듭니다. 자신의 성정체성 문제를 고백한 뒤 홀연히 사라진 미쓰키의 행방을 쫓는 과정에서 데쓰로는 미쓰키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적잖이 만납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의 정체성이 달라 고민하는 그들이 어떤 식으로 탈출구를 마련하는지 알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습니다. 동시에 스토커 살해사건의 진실 - 혹시 범인은 따로 있는가? 그를 죽인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경찰의 수사가 지지부진한 이유는 무엇인가? - 까지 추적하게 되는데, 거기에 냉정한 사회부 기자가 된 미식축구부 동료 하야타가 끼어들면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힙니다. 한편으론 지금껏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 젠더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미쓰키를 찾아 살인 미스터리의 진실을 알아내려는 데쓰로의 행보는 그저 무거울 수밖에 없고, 그 무게감은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됩니다.

 

당사자만의 내밀한 고민이자 같은 성향의 사람들끼리만 비밀리에 공유돼온 젠더의 문제가 스토커 살해사건이라는 돌발변수 때문에 만천하에 공개될 위기에 처하고, 거기에 휘말린 여러 인물들이 숱한 고민과 갈등, 위기와 충돌을 겪는 이야기가 700여 페이지라는 방대한 분량에 실려 있습니다. 미스터리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아무래도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역시 젠더의 문제입니다. 꼼꼼하고 방대한 자료조사의 흔적이 역력한 가운데 몸과 마음의 정체성이 달라 삶 자체가 지옥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의 사연이 사실적이면서도 절실하게 그려져서 읽는 내내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음이 남자인 미쓰키가 호르몬주사를 맞고 성대에 상처를 내면서까지 몸을 바꿔보려 몸부림치는 모습도, 대학시절 미쓰키와 성관계를 가진 적 있는 데쓰로가 착잡한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모습도, 미쓰키가 남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주변 인물들의 분투도 모두 100% 공감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었습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성정체성 문제를 겪는 미쓰키를 비롯한 여러 형태의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따갑거나 호기심 어린 시선을 피하지 못합니다. 음지에서 같은 취향의 사람들과만 어울리거나 미쓰키의 동료들처럼 은밀하고 불법적인, 하지만 그래서 평생 두려움을 감당해야 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젠가 미쓰키가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누릴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그러기 위해선 젠더의 문제가 좀더 자주, 폭넓게 논의돼야 할 것입니다. ‘외사랑은 한 편의 소설에 불과하지만 그런 논의의 장 가운데 하나가 되기에 충분한 텍스트입니다. 좀더 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을 읽고 젠더에 관해 고민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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