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라의 비밀 약방
사라 페너 지음, 이미정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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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 런던의 뒷골목에 자리한 비밀스러운 약방. 손님은 살의를 지닌 여자들이며, 약제사 넬라가 파는 것은 남자를 죽이는 독입니다. 오래 전 연인의 지독한 배신 이후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넬라는 엄마에게 물려받은 약방에서 남자를 죽이는 독을 팔아온 것입니다. 어느 날 심부름 온 12살 하녀 엘리자를 만난 뒤로 넬라는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립니다.

현재의 런던.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캐롤라인은 결혼 10주년 여행을 위해 잡아놓은 런던의 호텔에 홀로 투숙합니다. 템스강에서의 유물 찾기 이벤트에 참가했다가 하늘색 약병을 주운 캐롤라인은 역사학도다운 호기심에 약병의 사연을 알아내려 애씁니다. 그리고 그 약병이 200년도 훨씬 지난 과거에 한 약제사에 의한 연쇄 독살살인과 관련 있음을 알게 됩니다.

 

유물을 매개로 하여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잇는 방식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지만, ‘넬라의 비밀 약방은 과거의 연쇄살인사건을 현재의 인물이 추적한다는 미스터리와 함께 여성문학의 서사가 묵직하게 깔려있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남자에게 배신당한 뒤 남자를 죽이는 독을 만들게 된 약제사 넬라가 18세기 런던의 주인공이라면, 남편의 불륜 때문에 삶 자체가 뒤흔들린 것은 물론 지금까지 자신이 결혼이란 제도에 묶인 채 너무나도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온 것을 깨닫게 된 캐롤라인이 21세기 런던의 주인공입니다. 200년도 넘는 간극이 있지만 넬라와 캐롤라인은 남자, 사회, 제도라는 공적(共敵)을 둔 여자이자 자신을 옭아맨 것들과 과감히 싸우거나 그것들로부터 탈출하기로 결심한 투사라는 공통점을 가진 인물들입니다.

 

절망과 배신감에 휩싸인 여자들에게 독약을 팔던 넬라의 일상을 뒤흔든 건 12살 하녀 엘리자입니다. 독에 대한 호기심은 물론 약제사 넬라에 관한 궁금증에 사로잡힌 엘리자는 비밀약방의 모든 것이 그저 매력적일 뿐입니다. 더구나 이제 막 초경을 시작했지만 그것을 (자신이 배달한 독을 먹고 사망한) 귀족의 유령이 내린 저주 때문이라고 여긴 엘리자는 혹시라도 넬라가 그 유령을 퇴치할 약을 제조해줄 수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엘리자의 지나친 관심을 냉정하게 밀어내면서도 오래 전 뱃속 아기를 잃은 기억이 있는 넬라는 엘리자에게 복잡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복잡 미묘한 관계는 결국 비밀약방을 큰 위기에 빠뜨리고 맙니다.

 

원래 역사학도로서 런던 유학까지 계획했다가 결혼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했던 캐롤라인이 공교롭게도 템스 강가에서 발견한 작은 약병 하나 때문에 다시금 역사학도의 열정을 불태운다는 점, 또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억누르고 포기하며 살아왔는지를 깨닫는 과정 역시 무척 흥미진진하게 전개됩니다. 말하자면 캐롤라인이 모든 구속과 관습을 깨고 진정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된 성장 스토리라고 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불분명하긴 하지만 약제사 넬라에게서 닮은 느낌 혹은 연대감까지 느끼는 캐롤라인의 행보는 미스터리 못잖게 독자의 시선을 끕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을 넘나들며 공명하는 세 여성의 고통과 환희와 비밀스러운 연대. 런던의 화려한 외양 뒤에 가려진 어둠으로 입장하는 초대장.”이라는 알라딘 소설MD 권벼리의 소개글은 이 작품의 핵심을 잘 압축해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틀은 무척 단순하지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넬라와 캐롤라인의 이야기가 긴박하게 전개되고 막판에 거듭된 반전까지 곁들여진 덕분에 400여 페이지의 분량을 금세 완독할 수 있습니다. 영상미를 강조한 설정도 많아서 영화로 제작된다면 원작 이상의 매력을 맛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언젠가 넬라의 비밀 약방18세기 런던을 멋지게 구현한 대형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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