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브 디거 밀리언셀러 클럽 66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전새롬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모의 학대와 폭력 속에 비뚤어진 성장기를 보내며 크고 작은 전과를 쌓아온 야가미 도시히코. 32살이 된 그는 뒤늦게나마 자존감을 되찾고 그간의 잘못을 속죄하기 위해 골수를 기증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이식 수술을 코앞에 둔 어느 날, 야가미는 느닷없이 살인용의자로 몰린 것은 물론 정체불명의 사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어떻게든 추격을 뿌리치고 수술 병원에 도착하기 위해 분투하지만 2중으로 추격당하는 야가미의 처지는 갈수록 위태로워집니다. 한편 30대 감찰계 주임 겐자키와 정년이 얼마 안 남은 기동수사대 최고참 후루데라는 하룻밤 사이 연이어 기이한 살인행각을 벌이는 일명 그레이브 디거를 수사하면서 동시에 야가미의 행적을 쫓던 중 상상치도 못한 진실을 발견하곤 충격에 빠집니다.

 

데뷔작인 ‘13계단에 홀딱 빠져 뒤이어 출간된 다카노 가즈아키의 작품들을 연달아 읽은 건 2000년대 중후반의 일입니다. ‘그레이브 디거는 그의 두 번째 장편으로, 무척 흥미진진한 미스터리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숨 돌릴 틈 없는 도주극과 전대미문의 연쇄살인이 뒤섞인 (해설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면) ‘논스톱 서스펜스였습니다. 속죄를 위해 골수 이식을 결정한 악당 주인공, 그를 추격하는 정체불명의 사내들, 중세 영국의 처형 수법을 모방하여 충격적인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일명 그레이브 디거’, 그리고 상부를 속여 가면서까지 진실 찾기에 나선 젊은 감찰계 주임과 기동수사대 최고참 콤비 등 매력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인물들이 12시간에 걸친 숨 막히는 추격전을 이끕니다.

 

야가미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무사히 병원에 도착하여 자신의 골수를 기다리는 백혈병 환자에게 새 생명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자신을 살인용의자로 오인하는 경찰로부터, 또 무슨 이유에선지 자신을 붙잡으려는 정체불명의 사내들로부터 도망치는 와중에도 야가미는 오로지 무사히 병원에 도착하는 것만을 원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차곡차곡 모은 단서들을 통해 야가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조금씩 눈치 채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악연 아닌 악연을 맺어온 후루데라 경장이 자신을 쫓고 있다는 사실에 아이러니함을 느끼면서도 그에게 기댈 수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이 작품의 타이틀 롤이자 연쇄살인을 벌이는 그레이브 디거의 행각은 그야말로 엽기 그 자체입니다. 사지를 묶은 뒤 끓는 물에 삶아 죽이고, 온몸이 찢어지기 일보 직전에 이르도록 추락시키는가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불로 태워 죽입니다. 수사진은 이런 기괴한 살해수법이 중세 영국의 처형 수법과 꼭 닮았다는 사실을 알아내지만 범인이 왜 그토록 무리한 방법을 구사하는지는 도무지 알아낼 길이 없습니다. 그에게 살해당한 인물들의 접점을 가까스로 알아내긴 하지만 오히려 수수께끼는 더욱 복잡해질 뿐입니다.

 

야가미의 추격전과 그레이브 디거의 연쇄살인에 못잖게 흥미로운 대목은 경찰 내부의 알력입니다. 형사사건을 다루는 수사부와 테러 혹은 정치적 사건을 다루는 보안부 사이의 갈등이 꽤 비중 있게 그려지는데, 사건 자체와 무관해 보이던 이 갈등은 막판 클라이맥스와 엔딩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한 설정이라 내내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개인적으론 짜릿한 반전과 시간제한 미스터리가 잘 배합된 ‘13계단에 좀더 높은 평점을 줬지만, 장르적 매력에 관해서만큼은 그레이브 디거가 압도적이라는 생각입니다. 또 다양한 소재와 코드들을 복잡하면서도 정교하게 짜인 판 위에 빈틈 하나 없이 펼쳐놓은 필력은 이후 출간된 제노사이드의 예고편처럼 느껴져 역시 다카노 가즈아키!”라는 감탄이 저절로 튀어나올 정도였습니다. 독자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환불 보장을 내세워도 좋을 걸작.”이라는 해설속 문구는 제겐 절대 과장광고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