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데이 아르테 미스터리 15
T. M. 로건 지음, 천화영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케이트, 로언, 제니퍼, 이지. 대학시절부터 20년 동안 절친으로 지내온 네 사람은 각자의 가족들을 데리고 남프랑스의 고급 별장에서 1주일간의 여름휴가를 보내기로 합니다. 하지만 별장에 도착하자마자 남편 숀의 폰에서 불륜의 흔적을 발견한 케이트는 충격과 절망에 사로잡힙니다. 더욱 놀라운 건 숀과 메시지를 주고받은 여자가 절친 셋 중 한 명이 틀림없다는 점입니다. 분노와 자책을 거듭하며 싸울 것인지, 떠날 것인지 혼란을 겪던 케이트는 별장에서 절친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자신을 배신한 게 누구인지 알아내기로 결심합니다.

 

함께 1주일의 휴가를 보내게 된 절친 가운데 남편과 불륜을 저지르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케이트가 배신자를 찾아 나선다는 설정은 확장된 도메스틱 스릴러 구도이자 밀실 아닌 밀실에서 범인을 찾는 서사와 닮은꼴이라 초반부터 눈길을 끕니다. 남편은 물론 친구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까지 눈여겨보며 은밀하게 숨겨진 불륜의 흔적을 캐내려는 케이트의 심정은 남프랑스의 아름다운 풍광과는 대조적으로 거의 숨 막힐 듯한 절박함 그 자체입니다. 더구나 세 친구 모두 의심스러운 언행들을 거리낌없이 저지르는데다 남편 숀 역시 수시로 부적절한 모습을 보이는 탓에 케이트의 혼란은 더욱 가중됩니다. 나보다 똑똑하고 돈 잘 버는 로언, 나보다 예쁜데다 학창시절 숀의 연인이었던 제니퍼, 마흔까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싱글 생활을 즐기다가 정착하기 위해 돌아왔다는 매력적인 이지, 그리고 여전히 여성들의 눈길을 끄는 다정다감한 남편 숀. 이들은 하나같이 케이트로 하여금 분노 이상의 자책과 열등감을 느끼게 만드는 인물들입니다.

 

절친들 가운데 배신자를 찾아내려는 케이트의 이야기가 중심축이지만, 그녀들의 남편과 자식들의 이야기 역시 꽤 큰 비중으로 나란히 전개됩니다. 케이트의 남편 숀을 비롯하여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는 남편, 문제 있는 자식들을 마치 연구대상인 타인처럼 여길 뿐인 상담심리사 남편이 등장하고, 단순히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중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예비 사이코패스 10대 형제와 역시 10대지만 뭔가 심각한 고민거리를 지닌 듯한 소녀 등 주인공들 못잖게 눈길을 끄는 문제적 가족들이 시한폭탄마냥 고급별장을 어슬렁거립니다.

 

출판사 소개글 중 마지막 100페이지를 위해 달려가는 심리 스릴러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 작품을 잘 압축한 카피입니다. “절친들 중 진짜 불륜녀가 있을까?” “혹시 케이트가 불륜의 증거로 여긴 단서들이 다른 사건과 어떤 식으로 연결돼있는 건 아닐까?” 이런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 막판 100페이지에 걸쳐 폭죽처럼 터지기 때문입니다. 앞선 500여 페이지가 시속 60km의 정속주행 구간이었다면, 막판 100페이지는 그야말로 아우토반 그 자체입니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우선 케이트의 직업은 런던경찰청 범죄과학수사관으로 설정돼있지만 그 재능이 특별히 발휘되진 않습니다. 또 막판 100페이지가 분명 전광석화 같은 전개를 보이긴 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정속으로 주행한 서론이 너무 길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전작인 ‘29에서도 비슷한 아쉬움을 느꼈는데, ‘홀리데이의 경우 인물과 사건만 놓고 보면 600여 페이지의 분량까지 필요해 보이진 않았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한 가지만 더 얘기하자면, 케이트의 의심을 초래한 숀의 수상쩍은 행동들의 진짜 이유, 그러니까 막판에 드러난 진짜 사건은 개연성도 충분하고 얼마든지 납득 가능한 설정이지만 다소 뜬금없어 보인 면도 없지 않습니다. 물론 작가가 중간중간 노골적인 힌트를 주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역시 앞선 500여 페이지는 너무 길었다.”라는 느낌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데뷔작인 리얼 라이즈를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었지만 ‘29에서 다소 실망한 기억이 있어서 세 번째 작품인 홀리데이는 남다른 기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와 취향이 잘 맞는 작가는 아닌 것 같지만, T. M. 로건이 궁금한 독자라면 우선 리얼 라이즈를 먼저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