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섀도우
마르크 파스토르 지음, 유혜경 옮김 / 니케북스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1911,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매춘부의 아이들이 연이어 실종됩니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물론 실종된 아이들의 어머니들마저 매춘부라는 신분 때문에 신고조차 하지 못합니다. 범인이 괴물이니 흡혈귀니 불온한 소문만 무성한 가운데 모이세스와 후안은 경찰 수뇌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라진 아이들을 찾는데 전력을 다합니다. 어딘가 수상쩍은 오스트리아 출신 골상학 박사 이삭의 설명을 듣고 아이들의 피를 탐하는 흡혈귀의 범행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게 된 모이세스는 그와 동시에 납치된 아이들을 성매매에 이용하는 대형 매음굴의 존재를 파악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경찰 수뇌부는 모이세스의 수사를 중지시킵니다. 그런 가운데 평범한 중산층의 아이까지 실종되자 바르셀로나는 공포에 휩싸입니다.

 

언뜻 보면 아동을 대상으로 한 엽기적인 연쇄살인마 혹은 권력형 인신매매 사건을 다룬 정통 스릴러 같지만, ‘바르셀로나 섀도우는 괴담 스타일의 호러물에 더 가까운 작품입니다.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아이들의 순수한 피를 마시는 흡혈귀, 살해한 아이들의 신체와 장기를 약재로 만들어 부자와 권력자들에게 밀매하는 인물, 여자라면 시체라도 마다하지 않는 중증 시간증(屍姦症) 소년, 시신을 해부하여 인간이 짐승처럼 행동하게 하는 메커니즘을 밝혀내려는 수상쩍은 골상학 박사, 그리고 이야기 곳곳에서 1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저승사자에 이르기까지 현실을 뛰어넘는 캐릭터가 훨씬 더 많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수사를 이끄는 주인공 모이세스는 수뇌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매춘부의 아이들을 찾아 나선 정의로운 경찰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내 몰래 수시로 매춘부를 찾는 호색한이기도 하고, 상관의 명령을 개떡처럼 여기는 반골 기질인가 하면, 당시 인기를 끌고 있던 셜록 홈즈 시리즈를 비롯 탐정소설의 마니아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인물입니다. 뼛속까지 마초 기질인 정의로운 한량이라고 할까요?

 

모이세스와 후안의 수사는 현실감을 갖춘 미스터리와 스릴러로 포장돼있지만,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이 워낙 비현실적 호러물 캐릭터라 좀처럼 이야기의 정체성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이야기가 3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와중에 아무런 예고나 줄 바꿈도 없이 수시로 툭툭 튀어나오는 1인칭 화자, 그것도 죽은 자의 영혼을 데려가는 저승사자의 존재 때문에 독자 입장에선 무척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는 연극 속 설명역처럼 여기저기 출몰하여 그동안 자신이 거둬간 영혼들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독자가 궁금히 여기는 정보들을 제공하긴 하지만 그다지 눈길을 끌진 못합니다. 그나마 (초반부터 정체가 공개된) 흡혈귀이자 연쇄살인마인 40대 여성 엔리케타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려주는 대목이 흥미롭긴 하지만 결과적으론 이야기에의 몰입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작품의 원제는 ‘La Mala Dona’인데 어설프게 번역하면 악녀쯤 되는 것 같습니다. 즉 수사를 맡은 모이세스만큼 비중이 큰 흡혈귀이자 연쇄살인마인 40대 여성 엔리케타를 지칭하는 듯한데, 이 인물은 실은 20세기 초 실존했던 인물이라고 합니다.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바르셀로나의 흡혈귀로도 알려진 그녀는 아이들의 매춘을 알선했고, 아이들을 납치하여 살해한 다음 신체 부위를 이용해 연고와 물약을 만들어 부유한 고객에게 팔았다.”고 합니다. 팩션의 주인공으론 더없이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정작 이 작품에서는 너무 신비하거나 애매하게 그려진 탓에 다 읽고도 그녀의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역할도 등장 이유도 불분명한 저승사자대신 엔리케타를 전면에 내세웠더라면 다소 평범하긴 해도 훨씬 더 흥미진진한 스릴러가 됐을 거란 생각입니다.

 

1911년의 바르셀로나에 대해 작가는 살아있는 자들의 묘지또는 빈부 격차가 극심하고 질병과 강력범죄가 만연한 암울한 공간으로 설명합니다. 바르셀로나가 풍기는 불온한 기운과 섬뜩한 호러물 캐릭터들이 자아낸 서늘한 분위기는 압권이었지만, 이야기 자체가 너무 산만하고 모호해서 좀처럼 몰입하기 어려웠던 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불가능한 발상이긴 하지만 누군가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을 고스란히 재활용하여 좀더 대중적이고 선명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면 제 취향에 너무나도 잘 맞는 매력적인 호러 스릴러가 돼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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