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2 - 상극 타카시로 시리즈
도바 순이치 지음, 한성례 옮김 / 태동출판사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15살 중학생의 신고를 받은 실종자 수사과 3분실 형사 타카시로 켄고는 여중생 노조미 실종사건을 맡습니다. 애초 사건성 자체가 불분명했지만 가출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친구들의 진술과 딸이 사라졌는데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채 수사를 회피하는 듯한 부모의 태도 때문에 타카시로는 더더욱 사건에 매달립니다. 그러던 중 동료들이 진행하던 상해사건 목격자 실종사건과 노조미 실종사건 사이의 접점을 발견한데다 노조미의 아버지가 감춰온 가족의 비밀을 알아낸 타카시로는 유괴와 납치의 가능성에 비중을 두고 수사에 박차를 가합니다.

 

타카시로 시리즈또는 실종자 수사과 시리즈로 알려진 도바 슌이치의 작품으로, 약혼자의 실종을 다룬 1실종자 1 : 식죄의 후속작입니다. 일본 원작과 국내 두 출판사에서 지은 번역제목이 모두 제각각이라 좀 복잡해 보이는데, 1편의 경우 일본 원제는 식죄(蝕罪, 죄로 인해 썩어 들어간 상처)지만, 한국에서는 실종자 1’, ‘사라진 약혼자, 2편의 경우 일본 원제는 상극(相剋)이지만, 한국에서는 실종자 2’, ‘사라진 여중생으로 출간됐습니다. 이후 3편과 4편은 각각 사라진 대학 이사장’, ‘사라진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번역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판권 부분에 표기된 작가 이름은 Doba Shunichi인데, 한 출판사는 슌이치대신 순이치로 표기했으니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할 때 두 이름을 모두 찾아봐야 합니다.)

 

죽음보다 더 잔혹한 공중에 매달린 상태’”라는 점에서 실종은 생사가 확인되기 전까지 주위사람들의 모든 것을 잠식하는 끔찍한 범죄입니다. 특히 실종자의 가족은 좀처럼 사건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찰의 초기대응 때문에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실종은 그 어떤 강력사건보다 비중 있게 다뤄져야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잘 모르겠지만) 45살의 베테랑 형사 타카시로가 속한 일본 경찰청 실종자 수사과는 마지못해 만들어진 전시행정의 산물이자 동료들로부터도 짐짝또는 쓸모없는 맹장취급을 받는 조직입니다. 실제로 구성원 면면을 살펴보면 상부에게 밉보였거나 나사 하나쯤 빠진 듯 문제가 있거나 몸에 이상이 있는 말년형사로 채워져 있는데, 평소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듯한 그들이지만 정작 실종사건 수사에 임할 때는 그 어떤 엘리트 팀보다 더 열정적으로 움직이곤 합니다.

 

타카시로가 뛰어든 여중생 노조미 실종사건은 애초 사건성 자체가 부족합니다. 부모조차 경찰의 수사를 회피하는 탓에 노조미에 관한 세세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한 타카시로의 탐문 행보는 속이 터질 만큼 답답하고 느리게 이뤄집니다. 어렵게 찾아낸 작은 단서들을 이어 붙여 사건의 큰 그림을 그려내고 별개처럼 보이던 상해사건 목격자 실종사건과의 연관성까지 찾아내긴 하지만, 거기에 이를 때까지 타카시로가 겪은 고난은 실종사건 수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또 집요함 이상의 사명감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임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하지만 타카시로를 움직이는 힘은 절대 사명감이 아닙니다. 7년 전 행방불명된 당시 7살이던 딸 아야나는 아직도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고, 그 사건으로 인해 타카시로의 가정은 완전히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술과 담배에 찌들어 경시청 수사1과에서 쫓겨난 타카시로는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인 상태에서 실종자 수사과에 배속됐고, 이후 다른 사람과는 전혀 다른 마음가짐으로 실종사건 수사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수시로 눈앞에 어른거리는 아야나의 망상은 지친 타카시로에게는 위안이자 격려이자 죄책감의 근원입니다. 사명감과는 전혀 다른 그 무언가가 타카시로를 움직이게 만든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타카시로 외에 각자 사연을 가진 실종사 수사과 멤버들의 이야기도 눈길을 끄는데, 1편에서 타카시로와 묘한 케미를 발휘하며 수사를 이끈 27세의 묘진 메구미가 뒤로 한 발 물러선 대신 이번에는 전직 프로야구 선수였다가 부상으로 은퇴한 뒤 경찰이 된 35세의 다이고 루이가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언제 심장이 멈춰도 이상하지 않지만 적극적으로 현장을 누비는 말년형사 노리즈키 다이치와 실적을 올려 다시 한 번 조직 내 주류에 편입하려는 아비루 마유미 실장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사건 규모에 비해 45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 좀 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지루할 정도로 집요한 탐문이 대부분이라 성질 급한 독자에겐 안 맞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실종사건 수사의 교과서라고 해도 될 만큼 내실이 탄탄한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사건 자체도 꼼꼼하고 정교하게 묘사됐지만 타카시로를 비롯한 사건 관련자들의 심리와 내면을 섬세하면서도 찰지게 그려냈기 때문입니다. 사건보다 캐릭터에 더 빨려 들어갈 수 있는 작품이랄까요?

 

도바 슌이치는 (2013년에 마무리된 것으로 보이는) 10편의 타카시로 시리즈를 포함하여 최근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한국에 소개된 건 4편의 타카시로 시리즈3편의 나루사와 료 시리즈’, 그리고 스포츠소설 오심이 전부이고 2014년 이후론 전혀 소식이 없습니다. 대중성과 완성도를 겸비한 작가라서 출판사들이 욕심을 낼 법도 한데 그저 아쉽고 의아할 뿐입니다. 언젠가 그의 작품들이 한두 편씩이라도 한국에 소개되기를 기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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