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잠수복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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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과 주제 모두 폭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오쿠다 히데오지만 역시나 그의 이름을 들으면 바로 떠오르는 작품은 공중그네남쪽으로 튀어입니다. 물론 최악이나 방해자처럼 읽는 내내 불편함과 재미를 함께 준 작품들도 인상적이었지만,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거나 의외의 지점에서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재능이야말로 그의 트레이드마크라는 생각입니다.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된 코로나와 잠수복은 바로 그런 그의 장기가 잘 발휘된 작품입니다.

 

일본 원작 제목도 코로나와 잠수복이라 처음엔 수록작 모두 코로나 상황을 소재로 삼은 줄 알았는데, 표제작인 한 작품을 제외하곤 모두 코로나와는 무관한 이야기들입니다. 오히려 놀란 대목은 수록작 모두 (‘옮긴이의 말을 인용하면) “신기한 체험담이나 비과학적 괴담, 비일상적 판타지를 담은 장르소설이란 점입니다. 인간의 형상을 한 유령이 거의 모든 수록작에 등장하고 특별한 초능력을 가진 아이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의 모든 작품을 읽은 건 아니지만 부족한 기억력대로라면 오쿠다 히데오가 이렇게 대놓고 판타지 설정을 선보인 적은 없는 것 같아서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특유의 따뜻함과 치유의 문장들은 판타지 혹은 괴담 속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불륜을 저지른 아내에게 제대로 분노도 표하지 못한 채 제 발로 집을 나와 바닷가의 고택에서 여름을 보내기로 한 소심한 중년작가의 이야기(‘바닷가의 집’), 조기퇴직을 거부한 탓에 경비원 보조 업무로 내쫓긴 중년남성들이 복싱을 통해 생애 처음으로 고양감과 해방감을 만끽하는 이야기(‘파이트 클럽’), 자기중심적인데다 조건만 따지며 남자를 만나던 여자가 인기 절정의 프로야구 선수인 현재 연인 때문에 고민에 빠져 점쟁이를 찾아가는 이야기(‘점쟁이’), 스스로 코로나에 감염됐다고 확신한 30대 남자가 5살 아들의 외출을 위해 부득이 잠수복을 입었다가 TV와이드쇼에까지 출연하게 된 웃지 못할 코미디(‘코로나와 잠수복’), 오랜 로망이던 1984년 형 이탈리아 자동차 판다를 구매한 55세 남자가 그 차에 담긴 기막힌 사연을 알게 되면서 놀라우면서도 가슴 뭉클한 12일을 보내게 된 이야기(‘판다를 타고서’) 등이 실려 있습니다.

 

수록된 다섯 편 모두 따뜻함과 치유, 흐뭇함과 의외의 폭소로 잘 채워져 있습니다. 아내의 불륜이나 조기퇴직으로 인해 인생 최대의 위기에 빠진 중년남자들은 실은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에 어울리는 주인공들이지만 자신이 맞닥뜨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속에서 어떻게든 작은 탈출구를 찾아내는데 성공합니다. 조건만으로 남자를 고르는 지독히도 속물적인 여자는 끝까지 자신의 탐욕을 버리지 못하지만 그런대로 개과천선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자신이 코로나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패닉상태에 빠져 잠수복 차림의 외출을 감행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어쩌면 코로나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봤을 수도 있는 슬픈 희극입니다. 어렵게 구입한 희귀한 중고차가 알고 보니 슬프디 슬픈 사연을 지녔다는 이야기는 오랜만에 판타지를 읽으며 콧등이 시큰해지는 경험을 선사해줬습니다.

 

오쿠다 히데오의 매력과 장점이 잘 배인 작품들이긴 하지만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따뜻함과 치유의 농도가 조금 과한 탓에 전체적으로 싱겁거나 밍밍하게 느껴졌다는 점입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할까요? 좀더 톡 쏘는 맛과 촌철살인을 기대한 독자라면 저와 비슷한 아쉬움을 느낄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다만, 마지막 수록작인 판다를 타고서는 오쿠다 히데오의 모든 매력이 총출동한 최고의 단편이란 생각입니다. 이 한 작품만으로도 코로나와 잠수복을 읽기를 잘 했다는 만족감이 들었는데, 1시간 정도의 단편영화로 제작된다면 몇 번이라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팔색조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이는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소식은 늘 반갑습니다. 비록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코로나와 잠수복2년 넘게 지친 삶을 살아야만 했던 독자들이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독하고 센 장르물에 파묻혀 사는 독자들에겐 특별한 간식이자 아늑한 쉼터 이상의 작품이 돼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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