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월스트리트의 변호사 벤 브래드포드는 안정된 수입과 고급 주택을 둔 가장으로, 겉으로는 남부러울 게 없는 인물이지만 정작 본인은 조금도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어릴 적부터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그에게 사진은 그저 호사스런 취미로 남았을 뿐입니다. 그런 와중에 아내 베스와의 결혼생활이 삐거덕거리기 시작했고 벤의 자괴감은 점점 더 최악을 향해 치닫습니다. 어느 날 아내 베스가 이웃남자와 불륜관계임을 눈치 챈 벤은 늦은 밤 그의 집을 찾아가는데, 그날 밤에 벌어진 비극을 기점으로 벤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신간이나 근간도 아니고 12년 전에 출간된 작품이라 별 의미 없는 조언이겠지만, 아직 이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인터넷서점의 출판사 소개글은 물론 책 뒤표지의 짧은 홍보카피조차 보지 말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 작품의 결정적인 변곡점들이 모두 노출돼있어서 엔딩만 빠진 스포일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만큼 서평을 쓰는 일이 곤혹스러워진 건 당연한 일이고, 위의 줄거리 외에 달리 이 작품을 소개할 길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뒤 작품 활동은 주로 영국에서 하고 있는 더글라스 케네디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곳은 프랑스라고 합니다. 이 작품의 프랑스판 제목은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던 남자인데, 다소 직설적이지만 주인공 벤 브래드포드의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굴곡진 삶을 잘 대변하고 있는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꿈을 접은 채 살아가던 한 남자가 아이러니하게도 인생 최악의 사건을 겪은 뒤 자신이 꿈꾸던 삶을 살게 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게 손에 넣은 삶이 평탄하게 이어질 리는 없습니다. 벤이 올라탄 삶의 롤러코스터는 최대치의 급경사를 오르내리며 그를 쉴 새 없이 극과 극의 상황 속에 내던지곤 합니다.

 

사실, 극과 극의 상황이 이 작품의 뼈대이자 가장 큰 변곡점들인데, 스포일러 때문에 일일이 소개할 수 없는 건 이 작품을 직접 읽어본 독자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소한의 힌트라고 해봐야 줄거리에서 언급한 벤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됐다.” 정도인데, 아마 이쯤만 해도 이 작품의 대략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야기가 무척 빠르고 긴장감을 놓기 어려운데다 크고 작은 반전들이 연이어 벌어져서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란 점, 그리고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주인공이지만 어떻게든 그가 위기를 헤치고 성공과 행복을 손에 넣길 바라게 된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란 건 확실히 보장할 수 있습니다.

 

아쉬운 점도 분명 있긴 합니다. 처음 읽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이라 그의 성향이 원래 그런지는 잘 모르지만, 거의 일지에 가까운 디테일한 묘사들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지는 대목이 꽤 여러 곳 있었습니다. 꼭 필요한 부분들 - 가령, 벤이 애착을 갖고 있는 사진에 관한 기술적 설명들 - 은 아무리 자세하더라도 이해가 됐지만, 몇 줄로 요약해도 충분한 장면들에까지 과도하게 분량을 할애한 점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1997년에 출간된 작품임을 감안하더라도 벤이 도주, 인멸, 위장, 위조 등 난이도 높은 장벽을 헤쳐 나가는 과정이 너무 쉬워 보여서 사진작가를 꿈꾸던 변호사가 아니라 베테랑 스파이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과 함께 책장에 오래 방치돼있던 위험한 관계도 곧 읽을 예정인데, ‘빅 픽처의 아쉬움을 상쇄시킬만한 더글라스 케네디만의 진짜 매력을 제대로 맛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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