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는 마을
리사 주얼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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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비하와 연민에 휩싸여 살다가 충동적으로 결혼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오빠 부부 집에 얹혀살게 된 26살 조이는 이웃의 한 남자에게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느낍니다. 하지만 상대가 자신보다 나이가 두 배는 많은 51살의 공립학교 교장이자 유부남인 톰 피츠윌리엄이다 보니 조이 스스로도 당혹스러울 뿐입니다. 지역주민들에게 젠틀하고 유능한 성자로 칭송받는 훌륭한 교육자인데다 15살 여학생의 마음마저 흔들리게 하는 완벽남 톰을 볼 때마다 죄책감과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던 조이는 의도적으로 톰에게 접근하기 시작했고 넘어선 안 될 선 직전까지 이르지만, 하루아침에 살인용의자로 몰려 경찰의 심문을 받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

 

개인적으로 도메스틱 스릴러(Domestic Thriller, 가족 혹은 연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는 스릴러)를 그리 좋아하진 않습니다.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이후 봇물처럼 쏟아진 도메스틱 스릴러를 읽다가 피로감이 높아진 탓인데, 그래도 엿보는 마을처럼 설정 자체가 눈길을 끄는 경우엔 일단 100페이지까지만 읽어보자.”라는 심정으로 찾아 읽곤 합니다.

 

엿보는 마을은 장르상 도메스틱 스릴러가 맞긴 하지만 가족의 범위를 넘어 27채의 빅토리아풍 저택으로 이뤄진 멜빌 하이츠라는 고급주택단지의 주민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결혼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51살의 유부남에게 마음을 빼앗긴 26살 조이, 이른바 불량학교 재건 전문가이자 주민과 학생 모두에게 칭송과 사랑을 받는 완벽남 톰 피츠윌리엄, 그런 톰을 자신을 노리는 집단스토킹의 리더라며 비난하는 것은 물론 끊임없이 감시하는 이웃의 망상녀 트립, 트립의 딸이자 톰에게서 역겨움밖에 느끼지 못하는 탓에 그에게 홀딱 빠진 친구를 이해할 수 없는 15살 제나, 그리고 톰의 아들이자 언어와 기계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친구 하나 없을 정도로 사회성이 결여된 14살 프레디 등 고급주택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어딘가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인물들이 불온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324일 밤에 벌어진 살인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경찰심문이 간간이 끼어드는 가운데 직전 두 달 동안 톰과 관련된 멜빌 하이츠 주민들의 수상하거나 이상하거나 불안한 행적들이 이야기의 몸통을 이룹니다. 특히 완벽남으로 정평이 난 톰에 대한 의심들 여학생을 유혹한다느니 가정폭력을 휘두른다느니 대놓고 불륜을 저지른다느니 심지어 몇 년 전 수상쩍은 장면이 목격됐다느니 - 이 몇몇 사람들에 의해 제기되는 탓에 독자는 그가 혹시 가면 뒤에 추악한 진면목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26살 조이와 15살 소녀가 그에게 홀딱 빠져 위험천만한 애정을 품고 있다 보니 긴장감은 몇 배로 고조됩니다.

 

살인사건 발생 시각에 수상쩍은 행보를 보인 탓에 조이의 처지는 궁지에 몰립니다. 물론 독자 입장에선 당연히 조이가 범인일 리 없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유력한 용의자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막판에 이르러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면서 독자는 생각지도 못한 반전에 놀라게 됩니다. “독자는 교묘한 작가의 암시에 휘말려 계속해서 추리를 거듭하다가, 등잔 밑에 숨어 있던 보화를 찾아내게 된다.”라는 미국도서관협회의 리뷰대로 읽는 내내 엉뚱한 곳을 헤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독자에 따라 그럼 그동안 쌓아온 이야기는 뭐냐?”라고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지만, 찬찬히 복기해보면 살인사건 자체와 연관 없어 보이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와 해프닝들이 실은 정교하게 연결돼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톰을 칭송하거나 사랑하거나 의심해온 여러 인물들 역시 언뜻 보면 살인사건과 무관한 딴소리들만 한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의 정교한 설계 속에 누구 하나 빠져선 안 될 중요한 역할들 무엇보다 원제(Watching You)의 의미를 잘 드러낸 - 을 수행했음도 알 수 있습니다.

 

2018년에 출간된 엿보는 마을은 리사 주얼의 16번째 작품입니다. 한국 출간작으로는 그때 내 딸이 사라졌다’(Then She Was Gone, 2017) 이후 두 번째 작품인데, 작가의 이력에 비하면 의아할 정도로 덜 소개된 셈입니다. ‘엿보는 마을에 이어 한스미디어에서 다크 플레이스의 비밀’(The Night She Disappeared, 2021)을 출간할 예정이라고 하니 올해 안에 한번쯤 더 그녀의 쫄깃쫄깃한 도메스틱 스릴러를 맛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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