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무음에 한하여 아르테 미스터리 14
오리가미 교야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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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속 명탐정을 동경해 탐정 사무소를 연 아마노 하루치카. 그에겐 영혼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능력은 전능하기는커녕 약점 투성이입니다. 흐릿한 윤곽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용모도, 성별도, 연령도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대화는 100% 불가능합니다. 그야말로 볼 수 있다는 것 이상의 영능력자는 아니라는 얘깁니다.

 

아마노에겐 또 다른 약점이 있는데, 그건 탐정으로서의 자질 부족입니다. 그보다 훨씬 어린 한 등장인물이 영혼이 보인다는 건 진짜인 모양이지만 추리는 영 글렀네요.”라고 대놓고 지적하듯 아마노는 명탐정과는 거리가 한참 먼 만 2년차 초보탐정입니다. 더구나 표정에 속내가 다 드러나고, 탐정활동 중 사적인 감정이 툭툭 튀어나오는가 하면 너무나도 양심적이라 도대체 돈 벌 생각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심하게 말하면 탐정 부적격자에 가깝습니다. ‘옮긴이의 말의 부제인 “2퍼센트 부족한 특수 능력을 지닌 2퍼센트 부족한 탐정의 분투기는 아마노의 캐릭터를 한 줄로 잘 압축한 표현입니다.

 

이 작품에서 아마노가 맡은 사건은 두 개입니다. 하나는 자식들 대신 손자에게 거액의 유산을 남기고 사망한 자산가 노인의 죽음의 진실을 찾는 것이고, 또 하나는 2년 전 실종된 뒤 소식이 끊긴 남편과 사후 이혼이라도 하고 싶으니 죽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거나 시신이라도 찾아달라는 의뢰입니다. 노인의 죽음은 평범한 병사로 처리되어 화장까지 마친 상태이고,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남편은 실종 이후 이미 2년이나 지나 어디에서도 단서를 찾기 힘든 상태입니다. 죽음이든 실종이든 진실은 죽은 자 본인 외에는 알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 아마노는 영혼을 볼 수 있는 자신만의 능력을 발휘하여 진실 혹은 그에 가까운 사실을 알아냅니다.

 

특수 능력을 갖고 있긴 하지만 아마노로선 그 능력을 영업에 써먹을 수도 없습니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뿐더러 영혼을 통해 얻은 정보가 현실에서 증거로 채택될 리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아마노 본인조차 그 정보 자체를 정확히 해독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영혼을 보는 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지만 영혼이 있는 곳에서 잠을 자면 죽은 자의 시점으로 과거의 일이 무성영화처럼, 그나마도 툭툭 잘리거나 심하게 낡은 영상으로 보이는데,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탐정답게 추리해내야 하는 것이 아마노에겐 꽤나 벅찬 일이기 때문입니다. 특수 능력이든 탐정으로서의 추리력이든 둘 중 하나라도 확실하면 좋겠지만 어중간한 두 개의 능력은 명탐정을 꿈꾸는 아마노에겐 핸디캡 중의 핸디캡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핸디캡이 아마노의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듭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은 물론 그 부족함을 인간적이고 성실한 노력으로 채우려는 아마노의 행보는 처음엔 좀 답답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느 시점인가부터 응원해주고 싶을 만큼 순수하고 진정성 있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고 꼼꼼하게 질문을 하고 솔직한 태도로 의뢰인을 대하는 아마노는 비록 명탐정과는 거리가 멀지만 훨씬 더 믿음직한 카리스마를 발휘합니다. 또 좀처럼 그 의미나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영혼을 통해 얻은) 정보들을 끊임없이 분석하고 고민한 끝에 소기의 성과를 내지만 그저 운이 좋았다.”라고 말하는 소탈함 역시 그의 캐릭터를 한층 더 매력적으로 만듭니다.

 

독한 미스터리나 명탐정 캐릭터를 좋아하는 독자에겐 다소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지만, 따뜻함이 배어있는 가벼운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마음에 쏙 들 작품입니다. 읽는 동안 아마노의 이야기가 이 한 편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후속작부터는 (이 작품에 등장한) 자신보다 훨씬 어린 인물과 콤비 플레이를 펼친다고 합니다. 아마노와는 전혀 대조적인 캐릭터인 그 인물이 가세한다면 아마노의 부족한 부분이 많이 채워질 것 같은데, 좀더 성장하고 진화한 아마노가 어떤 사건들과 마주치게 될지, 어떤 식으로 자신의 능력을 키워갈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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