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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섬 민박집의 대소동 ㅣ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2월
평점 :
가나가와 현의 해변 소도시 하자키 반도의 끄트머리에는 사와타리지마, 일명 ‘고양이섬’으로 불리는 작은 섬이 있습니다. 피서객들로 섬 전체가 붐비던 어느 여름 날,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칼에 찔린 고양이 사체가 발견됩니다. 이어 며칠 뒤엔 바다를 질주하던 마린바이크와 절벽에서 추락한 사람이 충돌하는 사망 사고가 벌어지는데 문제는 죽은 남자에게서 타살의 징후가 발견된 점입니다. 더구나 고양이섬의 민박집 중 한 곳에서 부패한 사체까지 발견되자 이제 고양이섬은 원래의 명성 대신 연속살인이 벌어진 무서운 곳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고양이와 마약에 알레르기가 있는 형사반장 고마지는 경찰로서의 사명감이나 의욕이라곤 전혀 없는 임시파출소 순경 나나세를 앞세워 이 기이한 사건들을 수사하기 시작합니다.
‘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 ‘진달래 고서점의 사체’에 이은 ‘하자키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론 동물이 주조연을 맡은 장르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특히 고양이를 앞세운 일본의 코지 미스터리는 거의 읽은 적이 없는데, 현실감이 최고의 덕목인 미스터리와 스릴러에 ‘동물 판타지’가 끼어드는 게 통 납득도 안 되고 어딘가 너무 가벼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와카타케 나나미의 팬인데다 한국에 소개된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시리즈’ 중 한 작품이라 이 작품을 빼먹을 순 없었습니다.
하자키 반도 끝에 있는 작은 섬 사와타리지마는 언젠가부터 고양이섬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실제로 섬에는 30명 남짓한 주민의 세 배가 넘는 100여 마리의 고양이가 사방팔방에서 어슬렁대고 있습니다. 여름 한 철 피서객과 관광객을 상대로 1년 벌이를 하는 주민들은 그야말로 고양이와 함께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지만 연이은 살인사건으로 큰 충격에 빠집니다. 더구나 사건의 배후에 마약은 물론 18년 전 벌어졌던 현금수송차 강탈사건까지 연루된 게 드러나면서 고양이섬은 한순간에 오명을 뒤집어쓰고 맙니다.
만사태평 스타일의 형사반장 고마지가 수사를 지휘하지만 실제로 온몸에 크고 작은 부상을 입으며 악전고투하는 건 여름 임시파출소의 신참 순경 나나세입니다. 사명감도 의욕도 없이 한적한 섬에서 편안한 근무만을 꿈꾸던 나나세는 한편으론 “내가 왜 이러고 있나?”라며 한탄하면서도 한편으론 고마지와 함께 살인사건을 수사한다는 자긍심도 갖고 있습니다. 위험한 해안절벽을 기어 내려가고, 바다에 빠져 익사의 위기를 겪고, 스턴 건을 잘못 건드려 기절하는 등 안쓰러울 정도로 개고생을 하지만 그가 모아온 고양이섬에 관한 정보들은 고마지에게 사건 해결의 중요한 열쇠가 돼줍니다. 콤비 플레이라고까지 할 순 없지만 두 사람의 행보는 진지함과 유쾌함을 오가며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아울러 고양이섬 신사의 신관이지만 어딘가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는 노인과 그의 손주 부부, 사연 많은 민박집을 운영하는 노파와 손녀, 민박집에 기거하는 일러스트레이터, 기념품 가게 주인인 외설소설 번역가 등 고양이섬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일상 미스터리에 잘 어울리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입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팬이라는 사감을 배제하고 냉정하게 말하자면 ‘고양이섬 민박집의 대소동’은 사건 스케일이나 미스터리 심도 면에서 볼 때 조금 긴 단편 혹은 중편 정도에 어울리는 이야기입니다. 연이은 살인사건에도 불구하고 막판에 밝혀진 진상은 다소 싱겁거나 가벼운 해프닝에 가까워 보였고, 고마지 반장과 나나세 순경을 제외하고 고양이섬의 인물들이 사건 해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드물어서 ‘유쾌하지만 미미한 단역들’ 이상의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읽은 와카타케 나나미의 단편들을 떠올려 보면 이 작품은 그 정도 분량으로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는 ‘우당탕탕 소동극’ 정도였다는 뜻입니다. 그녀의 팬으로서 마음이 무척 아프지만 별 3.5개밖에 줄 수 없는 건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입니다.
사족으로...
(일본어판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하자키 시리즈’ 가운데 ‘진달래 고서점의 사체’는 2편, ‘고양이섬 민박집의 대소동’은 4편입니다. 그 사이에 3편 ‘クール・キャンデー’ (쿨 캔디) 한 편이 더 있는데, 2010년에 한국에 첫 출간됐을 때에도 무슨 이유에선지 1편(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 2편, 4편만 소개됐고, 이번 개정판 역시 그 세 편만, 그것도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시리즈 3부작’이라는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일본에선 2021년 시리즈 8편인 ‘パラダイス・ガーデンの喪失’까지 출간됐는데, 지금 분위기로는 더 이상의 ‘하자키 시리즈’를 한국에서 만나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