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풀 플레이스 더블린 살인수사과 시리즈
타나 프렌치 지음, 권도희 옮김 / 엘릭시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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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12월 아일랜드 더블린. 19살의 프랭크 매키와 로지 데일리는 끊임없는 폭력과 암울한 미래밖에 남지 않은 고향 페이스풀 플레이스를 떠나 잉글랜드에서의 새로운 삶을 위해 야반도주를 계획합니다. 하지만 당일 밤 로지는 약속장소인 16번지 폐가에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프랭크 홀로 고향을 등집니다. 그로부터 22년 후, 유능한 잠복수사관이 된 프랭크는 유일하게 연락을 주고받던 막내 동생으로부터 다급한 연락을 받습니다. 16번지 폐가에서 로지의 여행 가방이 발견됐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혼자 잉글랜드로 갔다고 여겼던 로지가 페이스풀 플레이스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된 프랭크는 그날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분투합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사망사건이 벌어지면서 프랭크는 큰 혼란에 빠집니다.

 

한국에 소개된 타나 프렌치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데뷔작인 살인의 숲’(2007)2010년에 출간됐으니 12년 만에 한국 독자와 재회한 셈인데, 뒤늦게라도 그녀의 더블린 살인수사과 시리즈를 다시 만나볼 수 있게 돼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20년 전 숲에서 두 친구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주인공이 살인사건 전담반 형사가 되어 다시금 그 숲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이야기를 다룬 살인의 숲과 마찬가지로, ‘페이스풀 플레이스역시 22년이라는 짧지 않은 간극을 두고 벌어진 끔찍한 살인사건과 비극으로 점철된 가족사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인 페이스풀 플레이스’(Faithful Place)는 주인공 프랭크가 19살까지 나고 자란 작은 동네의 이름입니다. 하지만 그곳은 긍정적이고 우아하기까지 한 이름과는 달리 폭력과 욕설, 시기와 질투, 이간질과 염탐으로 물든 데다 타인의 불행을 고소해하고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려는 비뚤어지고 일그러진 사람들이 살던 동네입니다. 22년 전 이 시궁창과도 같은 페이스풀 플레이스와 폭력적인 부모로부터 도망치려 했던 프랭크와 로지의 꿈이 산산조각 나면서 모든 비극은 잉태됐고, 22년 동안 외면했던 가족과 고향을 다시 마주한 프랭크는 두 번째 지옥을 예감하면서도 로지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기꺼이 시궁창에 발을 들입니다.

 

22년 전 실종된 로지의 진실과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미스터리가 밑바탕을 이루고 있지만 실은 이 작품의 중심서사는 애증으로 얼룩진 프랭크의 가족사입니다. 자신의 분노와 좌절을 폭력으로 해소한 아버지, 정신적인 폭력으로 자식들을 압박한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를 꼭 닮은 권위적이고 냉소적인 큰형 등 프랭크의 어린 시절을 지배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는 22년 전 그로 하여금 첫사랑 로지와 함께 잉글랜드로 도망칠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로지의 여행 가방이 발견되면서 피할 수 없는 재회를 하게 된 프랭크와 그의 가족 사이엔 조금의 감동도 눈물도 없습니다. 오히려 폭발 직전의 팽팽한 긴장만 어른거립니다. 아내와 이혼한 뒤 9살 딸과 1주일에 한 번밖에 만날 수 없는 프랭크의 현재 처지도 불행까진 아니어도 신산 그 자체입니다. 과거의 가족과 현재의 가족, 그리고 두 가족 사이에 낀 프랭크의 복잡다단한 감정은 미스터리 못잖게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대목입니다.

 

로지의 실종과 현재 벌어진 살인사건의 진실은 중후반쯤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어서 대단한 반전의 힘을 발휘하진 못합니다. 하지만 22년이라는 세월의 두께, 한없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애증의 가족사, 그리고 어떤 진실이 드러나더라도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암울한 미스터리는 반전 이상의 힘과 여운을 독자에게 선사합니다. 세상의 불행을 혼자 다 짊어져온 프랭크의 삶은 아주 약간의 희망만을 남긴 채 마무리되는데, 그래서인지 이후 타나 프렌치의 더블린 살인수사과 시리즈어느 작품에서라도 한번쯤은 꼭 다시 만나보고 싶어졌습니다.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더블린 살인수사과 시리즈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하며, 형사 한 명이 각 작품에서 주요 수사관으로 활동한다. 주인공은 다른 작품에서 보조 인물로 출연하는 식으로 각 작품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라고 합니다. 또 이 작품의 후속작인 브로큰 하버시크릿 플레이스도 곧 출간될 예정이라는데, 아쉽게도 프랭크가 주인공인 작품은 아닌 듯 하지만, 카메오처럼이라도 잠깐 만나게 된다면 무척 반가울 것 같습니다. (가능하다면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The Likeness’도 소개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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