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티켓
조 R. 랜스데일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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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천연두로 부모를 잃은 16살 잭 파커와 여동생 룰라는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친척집으로 가던 중 은행을 털고 도주하던 강도들과 마주칩니다. 할아버지는 숨지고 여동생 룰라가 강도들에게 납치됐지만 그 누구도 잭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습니다. 그런 잭에게 손을 내민 건 거구의 흑인 추적자 유스터스와 난쟁이 총잡이 쇼티. 잭은 할아버지에게 받은 땅 문서를 내걸며 두 사람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여동생 구출작전에 새로운 삶을 꿈꾸는 매춘부, 전직 현상금 사냥꾼인 보안관, 유치장 요강 청소담당인 흑인, 그리고 성질 고약한 멧돼지가 가세하면서 피비린내 진동하는 추격전이 텍사스를 무대로 펼쳐집니다.

 

납치된 여동생 구출하기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16살 소년인데다 구출을 위해 조직된 팀원 면면이 어딘가 블랙 코미디 같은 분위기를 풍겨서 처음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서부극 정도로 여겼던 게 사실입니다. 물론 그런 분위기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빅 티켓은 걸쭉하고 노골적인 음담패설, 피와 살이 튀는 무자비한 폭력, 총잡이가 활약하던 서부시대와 본격적인 산업혁명의 시대가 묘하게 겹친 19세기 말 미국의 혼란 등 날것 같은 잔혹함을 생생하고 역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추격전 자체도 흥미롭지만 독자의 눈길을 끄는 건 인물 하나하나의 독특한 캐릭터입니다. 선교사인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독실한 기독교인이 된 16살 잭은 사건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게 주님의 계획대로 이뤄진다고 믿으며 살인을 죄악시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여동생을 구출하기 위한 여정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살인을 비롯한 온갖 불법을 저지르게 되자 단단했던 종교적 신념이 무너지면서 크나큰 혼란에 휩싸입니다.

백인+흑인+코만치 인디언 혼혈인 유스터스는 흑인과 거지와 무법자의 시신을 묻고 수고비를 받는 천민이지만, 간간이 현상금 사냥꾼으로 활동하기도 합니다. 술에 취하면 피아를 구분 못하고 총질을 해대는 게 문제지만, 뛰어난 추적꾼의 기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난쟁이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학대당한 끝에 어린 시절 서커스단에 버려졌던 쇼티는 그곳에서 세상과 문학과 사격술을 배운 독특한 인물입니다. 핸디캡인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정찰병과 탐정을 거쳐 뛰어난 현상금 사냥꾼이 됐지만, 밤마다 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하고 항상 마크 트웨인의 소설을 탐독하는 로맨티스트이기도 합니다.

16살 잭의 동정을 책임진 매춘부 지미 수는 새로운 삶을 위해 매춘굴을 도망쳐 나온 뒤 잭의 팀에 합류한 당차고 활달한 인물입니다. 매춘부가 될 당시 끔찍한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선지 강도들에게 여동생을 납치당한 잭에게 큰 위안과 힘이 돼주기도 합니다.

 

잭 일행의 추격전은 피비린내 그 자체입니다. 가는 곳마다 강도 일당이 저지른 참혹한 살인 현장과 마주쳐야 했고, 일당을 숨기려는 자들과 예상치 못한 총격전을 벌이며 큰 위기를 맞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추격전 위주의 액션물에 그치지 않고 각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들의 희망과 체념을 골고루 채워 넣어 두텁고 탄탄한 서사를 구축합니다. 한편에선 현상금을 노리는 총잡이와 법적 절차를 무시한 교수형이 횡행하고, 다른 한편에선 금덩이 노릇을 하는 석유 유정탑과 부의 상징인 자동차가 혼재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인물들의 다채로운 캐릭터는 스토리 못잖게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특히 잭을 돕는 추적팀이 밑바닥 출신의 혼혈 흑인, 모든 이에게 손가락질 받는 난쟁이, 돈을 위해 몸을 팔아야 하는 매춘부로 구성된 점은 뿌리 깊은 차별을 상징적으로 강조하는 특별하고도 매력적인 설정입니다.

 

적잖이 발견된 오타와 간혹 이해가 잘 안 되는 번역 때문에 별 0.5개를 빼긴 했지만 빅 티켓은 기대 이상의 재미와 흥분을 안겨준 명품이란 생각입니다. 휴스턴 크로니클은 “‘톰 소여의 모험의 어두운 버전과 코엔 형제 영화처럼 느껴진다.”라는 평을 남겼는데, 만일 이 작품이 코엔 형제에 의해 영화화된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찾아보게 될 것 같습니다.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실제로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 중이라고 하는데, 코엔 형제가 감독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화려한 볼거리와 독특한 서사를 맛볼 수 있을 게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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