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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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에서 추리소설 전문서점을 운영하는 40대 맬컴 커쇼는 어느 날 FBI 요원 그웬 멀비의 방문을 받고 큰 충격에 빠집니다. 맬컴이 오래 전 블로그에 올린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이란 포스팅을 그대로 모방한 살인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그녀의 추측 때문입니다. 실은 그 포스팅은 가장 독창적이면서 실패할 확률이 없는 완벽한 살인을 다룬 여덟 편의 추리소설을 소개한 것으로 당시 맬컴이 일하던 서점의 홍보를 위해 올린 것에 불과하지만, 그웬의 주장대로 누군가 현실 속 완벽한 살인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했다면 그것은 엄청난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최악의 경우엔 본인이 살인용의자 혹은 공범으로 의심받게 될 상태에서 맬컴은 그웬과 함께 일련의 살인사건을 하나하나 조사해보기로 결심합니다.

 

한국에 출간된 피터 스완슨의 작품은 빼놓지 않고 모두 읽었는데, 매번 데뷔작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 맞먹는 작품을 기대했다가 다소 아쉬움만 느끼곤 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투적이고 틀에 박힌 서사 대신 늘 새로운 설정을 추구하는 점은 높이 평가해왔고, 그래서 이번 신작 역시 기대를 갖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고전 추리소설 팬들을 위한 오마주라는 출판사 소개글이었습니다. 처음엔 이야기 자체가 고전적이란 뜻으로 해석했는데, 읽어보니 애거서 크리스티를 위시한 황금시대(1920~30년대) 작품부터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에 이르기까지 미스터리 팬이라면 한번쯤 들어봤거나 필독서 목록에 올려야 할 명작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작품 속에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특히 맬컴이 작성한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에 등장하는 애거서 크리스티,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아이라 레빈, 도나 타트 등 가장 독창적이면서 실패할 확률이 없는 완벽한 살인을 그려낸 당대의 거장들의 작품들이 자주 언급됩니다.

 

초반부만 해도 맬컴과 마찬가지로 독자는 다소 엉뚱한 추측과 개연성 없는 추리를 펼치는 FBI 요원 그웬 멀비를 과대망상증으로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를 과정에 끼워 맞춘 듯한 그녀의 추리는 무리수로 보였고, 단지 서점 홍보를 위해 블로그에 글을 올렸던 맬컴이 엉뚱한 상황에 휘말리는 것으로 보일 여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쇄살인의 희생자(로 추정되는 자) 가운데 맬컴의 서점에 자주 드나들던 여성이 거론되자 맬컴은 그웬에겐 밝히지 않은 자신의 은밀한 과거를 떠올리며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자신과 그웬이 편의상 찰리라고 별명 붙인 그 연쇄살인범이 어쩌면 자신이 아는 그 사람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더 이상의 줄거리 소개가 쉽지 않은데, 초중반에 폭로되는 결정적인 변곡점(맬컴의 은밀한 과거)을 언급하지 않고는 그 뒷이야기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변곡점으로 인해 맬컴은 찰리라 별명 붙인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하고, 자기 주변의 인물들을 하나하나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유일한 아군이던 그웬마저 그를 돕지 못하게 된 상태에서 맬컴은 조금씩 진실에 다가가지만 결국 독자와 함께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으며 예상치 못한 엔딩을 맞이하고 맙니다.

 

이 작품에서 언급된 수많은 고전 가운데 제대로 읽어본 작품은 몇 편 안 됩니다. 가장 자주 언급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ABC 살인사건’,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은 워낙 어릴 적에 청소년 버전으로 읽은 기억밖에 없어서 무척 아쉬웠는데, 그래도 맬컴의 입을 통해 설명된 정보 덕분에 희미하게나마 줄거리가 떠오르곤 했습니다. 새삼 꼭 한 번 다시 읽어야겠다는 욕심이 들었는데 나머지 고전들 역시 기약할 순 없어도 필독 목록에 꼭 올려놓을 생각입니다. 다만, 이 작품에는 몇몇 고전에 대한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들어있으니 그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맬컴의 은밀한 과거, 블로그 포스팅을 모방한 연쇄살인범의 동기와 목적, 그리고 중간중간 ?” 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만드는 위화감 가득한 서술 등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은 꽤 입체적인 구도를 지닌 작품입니다. “범인은 누구?”라는 미스터리 서사에다 복잡하고 몽환적인 심리스릴러의 면모까지 갖춰서 풍성한 볼륨감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다만, 팽팽한 긴장감과 막판 반전에 대한 기대감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한 엔딩은 무척 아쉬웠습니다. 나름 몇 가지 반전이 일어나지만 이야기의 구도 상 모든 걸 뒤집는 짜릿하고 놀라운 장면을 연출하진 못합니다. 오히려 심연에 가까운 고통스럽고 씁쓸한 맛이 더 강하게 남는다고 할까요? 지금까지의 피터 스완슨의 작품들과는 완연히 다른 스타일의 작품인 건 맞지만 여전히 죽마사에 눈높이가 맞춰진 저로선 도리 없이 별 1개를 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신작 소식이 들린다면 주저 없이 달려들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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