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천국에 닿지 않기를
하세가와 유 지음, 김해용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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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된 테마파크에서 벌어진 끔찍한 대량 살인극을 독특한 구성과 문장으로 그려낸 나는 너를 죽일 수 없어로 데뷔한 하세가와 유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독자에 따라 ‘4차원으로 여길 여지가 많은 데뷔작이었지만 개인적으로 꽤 강한 인상을 받아서 두 번째 작품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다소 얇은 분량에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뤄진 연작집이라고 해서 살짝 실망했던 게 사실이지만, 읽는 내내 그리고 다 읽은 뒤에는 진짜 괴물 같은 작가가 나타났네!”라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수록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확실히 호러물 주인공들입니다.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검은 실에 이끌려 동물과 사람의 사체를 발견하는 소년, 타인의 원한을 알아볼 수 있는 남자, 봉인된 소각로에 갇혀 있던 신비한 소녀와 마주친 뒤 연이어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소년, 죽은 뒤에도 의식이 또렷한 채 어둠의 세계를 헤매면서 창과 거울을 통해 현실세계를 지켜볼 수 있게 된 남자, 그리고 아주 특별한 봉인의 능력을 지닌 소녀와 그녀에게 봉인당한 채 지하실에 갇힌 소년이 그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펼치는 이야기는 단지 무섭고 흉흉한 호러 스토리가 아니라 오히려 가슴 한쪽에 돌덩이가 턱 얹힌 듯한 먹먹함과 애잔함을 진하게 남겨놓습니다.

 

부디, 천국에 닿지 않기를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 속의 인물들은 참혹한 상황과 피할 수 없는 저주에 휩싸여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구원을 바라지 않습니다. 원치 않는 특별한 능력 때문에 어려서부터 경계와 혐오의 대상이 됐으며, 그 때문에 강제로 시설에 갇히거나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타인을 불행에 빠뜨리거나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을 비명에 사라지게 만들었던 그들은 결국 성인이 된 후에도 자책과 절망에 허우적대다가 대부분 구원 대신 파멸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차라리 지옥에 떨어지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부디, 천국에 닿지 않기를!”이라는 가슴 아픈 기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날부터 이어진 피할 길 없는 불행의 연속, 그리고 끝내 그것을 종식시키기 위한 그들의 마지막 선택을 지켜보는 건 호러물의 엔딩에서 만날 거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특별함 그 자체였습니다.

 

이 작품의 백미는 연작이란 형식을 통한 절묘한 구성에 있습니다. 각각의 인물들은 수록작을 넘나들며 등장하는데,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뒤얽히고 미스터리 요소까지 가세하면서 독자의 높은 집중력을 요구합니다. 아무런 메모도 없이 페이지를 넘겼다간 마지막 장에 이르러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난감한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신 사방에 흩어진 퍼즐들을 제대로 꿰맞춘다면 그 어느 미스터리나 연작집에서도 맛보지 못한 짜릿한 쾌감과 진한 애틋함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실은 다 읽은 뒤 남겨놓은 메모들을 토대로 시간 순으로 이야기를 정리하는 데만 1시간 가까이 걸렸는데, 고백하자면 그 과정에서 이 작품의 진가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인물들의 관계, 그들의 과거와 현재, 그들이 구원 대신 기꺼이 지옥을 선택한 이유 등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알맹이를 정리 과정에서 제대로 발견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 점에서 가능하다면 매 수록작마다 등장인물에 관한 짧은 메모라도 남길 것을 꼭 권하고 싶습니다. (위화감과 모호함, 설명 부족 등으로 보이는 대목들이 수두룩하지만 다음 수록작 또는 마지막 수록작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으니 복잡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더라도 어떻게든 견뎌내시기 바랍니다.)

 

제가 내린 한 줄 평은 특별한 능력 때문에 누구도 겪을 일 없는 비극을 맞이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순수함과 처연함마저 느껴지는 비극성에 호러물의 미덕과 연작집의 장점까지 가미된 부디, 천국에 닿지 않기를은 결코 쉽게 읽힐 작품은 아니지만 공들여 읽은 뒤 참맛을 맛본 독자에겐 분량의 몇 배에 달하는 깊은 인상과 여운을 남겨줄 작품임에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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