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트 오브 테러
힐러리 로댐 클린턴.루이즈 페니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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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미디어 제국의 수장인 50대 후반의 엘런 애덤스가 새 정부 초대 국무장관으로 임명되자 모두 놀랍니다. 경선 당시 자신을 지독하게 공격했던 엘런을 임명한 신임 대통령 윌리엄스의 결정도, 그 임명을 수락한 엘런의 결정도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둘 사이는 견원지간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모종의 함정임을 알면서도 기꺼이 장관직을 받아들인 엘런은 어떻게든 난국을 헤쳐 나가려 하지만 유럽에서 잇달아 폭탄테러가 벌어지고, 거기에 중동의 테러리스트와 러시아 마피아는 물론 전직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 내 극우조직까지 관련된 게 밝혀지자 혼란에 휩싸입니다. 전용기를 타고 유럽, 중동, 러시아를 날아다니며 테러의 배후와 궁극적인 목표를 조사하던 엘런은 미국을 향한 끔찍하고 명백한 공격 계획을 알게 되자 엄청난 충격에 빠집니다.

 

대통령이 될 뻔한 베테랑 정치인 힐러리 클린턴과 캐나다의 조용한 마을을 무대로 한 서정적인 미스터리 가마슈 경감 시리즈의 작가 루이즈 페니가 함께 소설을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호기심이 일었는데, 그 소설이 테러를 소재로 한 정치 스릴러라는 걸 알곤 놀람과 함께 고개가 갸웃거려진 게 사실입니다. 영부인, 상원의원, 국무장관을 역임한 힐러리가 재임 중에 겪었던 일을 자서전으로 펴낸 거라면 몰라도, 루이즈 페니와 함께 미치 랩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테러-액션-정치 스릴러를 썼다는 건 만우절 농담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테이트 오브 테러는 제목 그대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테러의 위협에 처한 미국의 상황을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엘런 애덤스는 누가 봐도 힐러리 클린턴의 분신입니다. 거대 미디어 제국의 수장이었다는 이력만 빼면 거침없이 폭주하던 열혈 국무장관 힐러리의 모습이 수시로 연상되기 때문입니다. 전용기를 타고 테러 현장은 물론 관련 국가들의 수장을 만나기 위해 직접 발로 뛰는가 하면, 다소 무기력해보이기까지 한 미국 대통령을 향해 충고와 독설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완급을 조절한 외교술과 능란한 정치적 판단, 그리고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능력까지 겸비한 엘런은 미국을 향한 테러 계획을 밝혀내고 배후의 세력들을 발본색원하며 마치 중년여성으로 환생한 미치 랩을 보는 듯한 인상까지 뿜어냅니다.

 

엘런 외에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각국의 수장들은 누구라도 그 모델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노골적으로 묘사됩니다. 막가파 식 정치와 외교로 미국을 혼란에 빠뜨린 전직 대통령 트럼프, 러시아의 패권을 노리는 세계적 문제아 푸틴, 그리고 이란의 전설적 지도자 호메이니 등이 그들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들 외에도 힐러리의 오랜 친구와 그 가족이 중요한 인물로 소설에 등장한다는 점, 또 루이즈 페니가 창조한 캐나다 스리 파인스의 유쾌한 경감 아르망 가마슈가 막판에 카메오로 꽤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는 점입니다.

 

세계를 무대로 삼을 만큼 스케일도 크고, 미국 본토를 향한 어마어마한 테러 계획이나 백악관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갈등이 디테일하게 묘사된 점은 힐러리의 경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테러-액션-정치 스릴러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 가운데 부드럽고 섬세한 문장들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루이즈 페니의 공이 분명합니다. 두 사람의 협업이 적잖은 분량임에도 단번에 마지막까지 달릴 수 있을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건 맞지만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로 아쉬운 점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가장 큰 아쉬움은 판을 너무 크고 복잡하게 펼치느라 정작 단순하고 확실해야 할 요소들이 불분명하거나 모호해졌다는 점입니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전용기를 타고 바삐 날아다니는 엘런을 쫓아가다가도 지금 엘런의 목표는 뭐지?”라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고, 중동의 여러 나라와 러시아가 얽힌 테러 계획의 전체적인 그림이 문득문득 흐릿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디테일이 스케일의 무게에 짓눌렸다고 할까요? ‘스테이트 오브 테러못잖은 서사 속에서도 주인공과 악당, 동기와 목표, 계획과 실행이 선명하게 그려진 미치 랩 시리즈가 단순하고 확실한 설정 덕분에 한시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던 점과 확연히 비교되는 대목인데, 평점에서 별 1개를 뺀 유일한 이유는 이 불분명함과 모호함 탓입니다.

 

일촉즉발의 위기가 해소된 뒤 엘런은 앞으로도 결코 멈추지 않을 테러의 위협을 피부로 절감합니다. 이 마지막 장면을 엘런 애덤스 시리즈의 예고편으로 여기는 건 지나친 기대감이겠지만, 혹시라도 후속작이 나온다면 스케일과 복잡함보다는 단순하고 확실한 설정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거침없는 국무장관 엘런의 매력도 훨씬 더 강렬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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