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카타 돈코츠 라멘즈
키사키 치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어렵게 취업한 회사가 알고 보니 살인청부회사라는 걸 알게 된 사이토는 6개월의 훈련을 마치고 도쿄 본사에 투입되지만 큰 실수를 저질러 후쿠오카 지점으로 좌천됩니다. 그 무렵 후쿠오카는 시장 선거를 앞두고 킬러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던 시점. 3선을 노리는 현직 시장은 암흑가와의 긴밀한 유착관계를 통해 권력 기반을 다져왔고 이번 선거 역시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었지만, 개망나니 아들 때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시장에게 직속 고용된 킬러들은 선거 경호에 아들 문제까지 해결하느라 초죽음이 되는데, 이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면서 괴짜 탐정, 어리바리한 신참 킬러, 킬러를 죽이는 킬러, 조직과 정면대결을 선언한 중국계 킬러 등 여러 인물들이 얽혀들면서 사방팔방에 피와 살이 난무하는 참상이 벌어집니다.

 

하카타 돈코츠 라멘즈는 먹방 콘텐츠 같은 제목에다 라노벨 스타일의 표지 때문에 애초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작품인데, 우연히 살인청부업자 이야기란 걸 알게 돼서 뒤늦게 찾아 읽게 됐습니다. 일본에서는 2014년부터 2021년까지 무려 10(외전 격의 단편집과 콜라보 작품은 제외)이 출간됐지만 한국엔 4(2018)까지 출간되곤 더 이상 소식이 없는데, 그래도 나름 화제성도 엿보였고, 특히 살인청부업자 이야기라면 좋아하는 소재 중 하나라서 기대감을 갖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5년 전에 후쿠오카의 하카타에 머물면서 1주일 정도 규슈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그래선지 후쿠오카 인구의 3%가 킬러라는 설정에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작가는 저자 후기를 통해 팩트가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이 작품 속의 후쿠오카는 본토 업자는 물론 해외에서 유입된 폭력조직과 살인청부업자가 경쟁적으로 살인을 벌이는 무시무시한 공간으로 설정돼있습니다.

 

킬러들의 대결과 합종연횡을 그리다 보니 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시장에게 직속 고용된 4인조 킬러, 인신매매를 주업으로 하는 중국계 신흥 조직,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모토에 따라 활동하는 복수대행업자, 그리고 어눌해 보이지만 뛰어난 정보망과 지략을 갖춘 괴짜 탐정 반바와 전혀 소질이 보이지 않는 허당 신참 킬러 사이토가 그들입니다.

서로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던 그들은 몇몇 사건이 우연과 필연을 통해 이어지면서 정면대결을 벌이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후쿠오카의 킬러라면 누구나 들어본 적 있는 도시전설과도 같은 코로시야코로시야’(屋殺)가 등장합니다. “악행을 지나치게 저지른 킬러는 그가 처단한다.”는 소문과 함께 니와카사무라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그는 탈을 쓰고 장검을 휘두르는 천하무적 킬러인데, 정작 그를 제대로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어서 더 신비감을 고조시킵니다.

 

킬러 이야기라는 속성 탓에 너무나도 쉽고 가볍게 사람들이 죽어나가서 현실감도 떨어지고 불편함이 느껴질 때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소설입니다. 각자 뚜렷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도 매력적이고, 사건도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데 충실하게 설정돼있는데, 가장 눈길을 끈 건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던 적잖은 킬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사건들을 통해 한 자리에 모이게 만든 짜임새 있는 구성입니다. 라노벨 스타일의 쉽고 단순한 문장들 때문에 전체적으로 가벼워 보일 수도 있지만 나름 빈틈없이 촘촘하게 설계된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독자의 흥미를 고조시켜줍니다. 그리고 깊이 고민할 것도 없이 확실하고 통쾌하게 악을 응징하는 엔딩은 비록 주인공들 대부분이 킬러 혹은 폭력을 거침없이 사용하는 자들이라 해도 짜릿한 쾌감을 남겨줘서 오락물로서의 미덕을 십분 발휘하고 있습니다.

 

킬러들의 이야기면서 왜 제목이 하카타 돈코츠 라멘즈일까, 궁금했는데, 그 사연은 마지막에 공개됩니다. 살인에 얽힌 위험천만한 인물들이 소박한 원 팀이 된다는 설정은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미끼입니다. 가끔 킬링 타임용 오락물이 생각날 때면 남은 시리즈들을 읽어볼 생각인데, OTT에 올라와있는 애니메이션 역시 기회가 되면 꼭 찾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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