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심장 스토리콜렉터 100
크리스 카터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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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내내 월반을 거듭해 23살에 범죄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LAPD 특수사건전담반 팀장으로 일하는 로버트 헌터는 FBI도 탐내는 뛰어난 프로파일러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가 파견 형식으로 콴티코의 FBI 아카데미에 오게 됩니다. 우연한 사고로 범행이 드러난 살인용의자가 헌터에게만 말하겠다.”며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헌터는 심문실에 도착해서야 용의자가 과거 대학시절 절친이자 범죄심리학도로서 라이벌이었던 루시엔 폴터라는 걸 알곤 크게 놀랍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동안 헌터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지옥과도 같은 날들을 보내게 됩니다. 희생자의 수조차 가늠할 수 없는 역대급 연쇄살인의 진실을 파헤치는 일도 고통스러웠지만, 오랫동안 봉인해온 끔찍한 트라우마까지 폭발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낯선 작가의 작품 띠지에 “‘양들의 침묵을 능가하는 충격 심리스릴러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면 일단은 과장 광고로 여길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지만 북로드에서 출간한 작품이라면 의심보다는 호기심이 먼저 발동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능가여부는 독자 개개인이 판단할 일이지만, 개인적으론 양들의 침묵에 못잖은 소름 돋는 소시오패스 스릴러라는 생각입니다.

 

연쇄살인마와 강력계 형사로 마주한 두 범죄심리학자, 끝을 알 수 없는 두뇌 싸움으로 서로의 심연을 들여다보다!”라는 홍보 카피대로 이 작품은 사건도 사건이지만 범죄심리학자간의 불꽃 튀는 심리공방전이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미세한 표정 변화, 사소한 몸짓, 미묘한 말투만으로도 상대방의 심리와 생각을 읽어내는 능력을 가진데다 함께 범죄심리학을 전공하며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던 추억을 공유한 연쇄살인마와 강력계 형사의 만남은 양들의 침묵에서 그려진 FBI 연수생 클라리스 스탈링과 식인 살인마 한니발 렉터의 심리전과는 전혀 다른 결의 긴장감을 초반부터 팽팽하게 부풀려 놓습니다.

 

이미 체포된 범인과 안전한 거리를 두고 심문을 벌이는 형사라는 구도 때문에 자칫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지루한 심문 일지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작가는 여러 개의 액자소설을 끼워 넣는 형식을 통해 연쇄살인마가 저지른 끔찍한 고문과 살인, 헌터의 비극적인 가족사와 트라우마 등을 번갈아 그려내면서 조금도 느슨해질 틈이 없는 스피디한 스릴러를 구축했습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설정은 어디에 묻혀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수십 명에 달하는 희생자들의 사체를 찾아야만 하는 헌터에게 루시엔이 그 누구도 짐작하기 어려운 기괴한 범행동기를 자랑스럽게 피력하는 것은 물론 헌터가 원하는 걸 얻으려면 자신이 제안하는 심리전에 가담하도록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루시엔에게서 정보를 얻기 위해서 헌터는 그가 던진 질문에 거짓 없이 답을 해야만 하는데, 문제는 루시엔이 던지는 질문 하나하나가 헌터에겐 참혹한 고문과도 같은 일이라는 점입니다. 루시엔의 집요한 질문은 뛰어난 범죄심리학자이자 프로파일러인 헌터의 평정심을 요동치게 만들고, 결국엔 파국에 가까운 상황을 초래하고 맙니다. 그리고 그제야 루시엔이 헌터를 콕 찝어 심문자로 선택한 이유도 함께 폭로됩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제대로 언급할 순 없지만 루시엔의 범행 동기는 그동안 보아온 어느 가공할 소시오패스와도 차별화되는 독특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 읽고 찬찬히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책이나 영화로 만난 소시오패스들은 루시엔에 비하면 잔챙이처럼 느껴진다고 할까요? 물론 중후함(?)에 있어서는 한니발 렉터가 으뜸이지만, 루시엔은 범죄심리학자 출신 연쇄살인마답게 그만의 확고하고 뚜렷한, 하지만 동시에 어이없으면서도 이상하게 공감이 가는 범행동기를 지니고 있어서 개성에 관한 한 한니발 렉터에 못잖은 캐릭터라는 생각입니다.

 

검색해보니 크리스 카터는 이미 로버트 헌터 시리즈로 큰 명성을 얻은, 그래서 이제야 한국에 소개되는 게 이상할 정도인 스릴러의 대가입니다. 그의 홈페이지를 보니 악의 심장은 시리즈 여섯 번째 작품(2014)인 듯 싶은데, 대단한 필력에도 반했지만 매력적인 주인공 로버트 헌터 때문에라도 이 시리즈가 앞으로 계속 출간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됐습니다. FBI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연방요원 대신 LAPD의 강력계를 고집해온 그의 출발점부터 차근차근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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